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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열대어 키우기 지극정성인 딸 죽음과 새생명 보며 더욱 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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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열대어 키우기 지극정성인 딸 죽음과 새생명 보며 더욱 큰듯

입력
2008.05.0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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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딸아이가 고교 3학년 때 생일선물로 받았다며 열대어 한 쌍이 든 어항을 갖고 왔습니다. 예쁜 열대어는 너무 작아서 어항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볼라치면 수줍은 듯 물대나무 뿌리 속으로 몸을 감추곤 했지요. 그래서 이름이 ‘새치미’가 됐습니다. 딸아이는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물을 갈아주고, 숙제는 미루더라도 잠들기 전 먹이를 수저로 잘게 부수어 챙겨주었습니다. 아내는 “방과 후 집에 와서도 엄마 얼굴은 뒷전이고 어항 속의 고기부터 살핀다”고 했습니다.

새치미는 지극한 딸의 정성으로 사이 좋게 잘 자랐습니다. 지난해 봄 움직임이 분주하고 안절부절 못 하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신부의 배가 볼록해지면서 모두가 잠든 밤 몰래 깨알만한 알들을 낳았습니다. 딸은 이튿날부터 더 바빠졌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열대어는 제 알을 먹는 습관이 있다”며 빈 어항을 사 갖고 와 알들을 조심스럽게 옮겨 놓았지요. 그런데 며칠 후 아침 딸애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세상에, 새치미 부부가 물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었습니다. 후에 알게 됐지만 덮개가 있는 곳까지 가득 물을 담아주어 산소 공급이 안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둘러 땅에 묻었지만 딸은 자신의 부족했던 보살핌을 후회하며 새치미의 죽음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작은 새치미의 죽음이 큰 코끼리의 죽음보다 더 커 보였습니다. 더 예쁜 물고기를 사다 주겠다는 달램에도 딸의 슬픔은 위로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난 무렵, 회사로 걸려온 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빠, 오늘은 일찍 들어 오세요.” 뜻밖에 밝은 딸의 목소리를 의아해 하며 퇴근 후 잰 걸음으로 현관에 들어서니 딸이 다짜고짜 저의 옷소매를 잡아 새 어항 쪽으로 이끌었습니다. 딸의 떨리는 손끝이 가리키는 투명한 어항 속에는 신기한 요술처럼 하늘나라로 간 새치미의 아들딸들이 태어나 있었습니다. 두개의 까만 눈동자로 밖에 안 보이는 작은 생명들이 꼬물꼬물 무리지어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되살아난 새치미의 화신과도 같았지요. 딸은 표정이 잔뜩 상기돼 있었습니다. “저게 새치미네 아가들이 맞지? 맞지?” 딸아이의 지극한 순수한 마음에 감동된 것인지, 수초도 없는 그 작은 어항 속에서 기적적으로 새 생명이 태어난 것입니다.

포근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거실에서 새치미의 자녀들이 어미보다 더한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고 있습니다. 딸도 예전처럼 어항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예쁜 미소를 짓는 시간이 늘어났고, 전에는 무관심했던 아들도 이제 빵가루를 보슬보슬 비벼 어항 속에 넣어주기도 합니다. 정말 사랑은 조건 없이 베풀 때 가장 아름다운가 봅니다. 무엇보다 딸아이가 밝은 웃음과 수다를 되찾아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새치미의 새 생명이 자라고 있는 작은 어항과 함께 우리 네 가족의 행복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박명식 - 서울 구로구 오류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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