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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2001년의 부시·2008년의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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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2001년의 부시·2008년의 이명박

입력
2008.05.0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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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간 행보가 속도를 내고 있다. 미 국무부 성김 한국과장이 어제 평양을 재방문해 핵 신고와 검증 문제를 최종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렵게만 보였던 쟁점들이 해결의 기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정세 호전을 반영하듯 북한과 미국은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 진전되는 북미, 엇나가는 남북

북한은 영변 원자로의 가동일지를 전부 제출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면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겠다는 획기적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냉각탑이 철거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북핵 문제의 전향적 해결을 가시화하는 상징이 될 것이다. 북한과 시리아의 핵 커넥션 증거를 공개했음에도 대미 비난이나 반발 없이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은 점도 눈길을 끈다.

오히려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한 의회 달래기 용으로 북미가 사전에 입을 맞췄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북한의 유연한 대응에 발맞춰 미국도 핵 신고서가 제출되면 검증 이전이라도 테러지원국 해제를 추진하겠다며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50만 톤의 식량 지원 논의도 구체화하고 있다.

협상의 판을 깨지 않고 문제 해결에 매진하는 북미관계에 비해 남북관계는 영 다른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당국간 공식대화는 중단되었고, 북한은 대통령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연일 비난을 지속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연락사무소 제안마저 거부했다. 북미관계는 순항하는 반면 남북관계는 찬바람이 부는 대조적인 모습은 2001년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의 상황과 오버랩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정권교체로 등장한 부시 행정부는 당연히 전임 정부의 정책을 부인하는 데 익숙했다.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과의 합의는 성가신 것에 불과했다. 6개월 간의 재검토를 거쳐 내놓은 대북정책은 제네바합의 이행의 개선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었다. 경수로의 화력발전소 대체논의가 나오는가 하면 경수로 건설이 지연되는데도 핵사찰만 서둘렀다.

북한은 즉각 반발했고 제네바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경수로 지연에 따른 보상을 요구했다. 급기야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연설에서 북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이후 북미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결국 그 해 말 제2의 북핵 위기가 등장했다.

선과 악의 이분법에 기초해 가치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이른바 도덕외교가 북에도 적용되었다. 북한과의 협상은 그 자체로 죄악이었고 북한의 요구는 들어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6년 동안 북핵 문제는 악화일로였으며 핵실험으로 결국 핵무장까지 용인하고 말았다.

정권교체의 정치적 편향과 북한을 협상파트너가 아닌 교화 대상으로 간주한 대북압박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2007년 들어서야 양자회담과 주고 받기 식 협상을 수용하게 되었다. 의기양양하게 클린턴의 대북정책을 부인하며 제네바합의 이행을 꺼려 했던 부시행정부는 북한을 굴복시키지도, 핵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 채 6년 동안 ‘실패한 외교’를 하고 말았다.

■ 미의 실패경험을 왜 따라가나

그런데 2008년 지금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명박 정부가 똑같이 7년 전 부시 행정부의 과오를 반복하고 있다.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은 단어 하나라도 따라 해서는 안 되고 이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한 정상선언은 이행 대상이 아니라 재검토 대상일 뿐이다.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명분에 따라 대북정책의 연속성은 이미 단절되었다.

북미가 잘되는데 남북이 어깃장을 놓는 형국이다. 과거의 실패경험을 교훈으로 삼지 못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다. 미국이 실패하고 돌아온 길을 이명박 정부가 굳이 고집할 이유는 없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남북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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