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5년차 주부 A씨는 시댁과의 갈등이 폭발하자 어린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간 뒤 이혼 소송을 냈다. 남편 B씨는 남겨진 초등학생 아들에게 ‘엄마가 너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설명했고, 아들은 엄마 A씨와의 만남을 피할 정도로 엄마를 미워하게 됐다.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는 고민에 빠졌다. 법률적 판단에 앞서 뒤틀린 모자관계의 회복이 중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이들 부부와 자녀가 지속적인 만남을 갖도록 했다.
적극적인 상담과 설득 끝에 아들은 엄마에게 다시 마음을 열었고, 이 과정에서 A씨와 B씨도 가정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돼 이혼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조정이 성립됐다.
가사소송 사건에서 판결까지 가지 않고 당사자들 간 조정이나 화해로 마무리되는 비율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서울가정법원이 최근 5년간 1심 가사소송 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조정이나 화해로 종결된 사건의 비율은 2003년 27.9%에서 매년 꾸준히 늘어 지난해 31.2%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 3월말까지 통계에서는 조정ㆍ화해 건수가 전체 처리 건수 3,460건 중 1,217건(35.2%)으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 데다, 같은 기간 판결 건수(1,133)보다 더 많았다.
이 같은 추세는 가정법원이 사법기관으로서의 고유한 재판 기능과 함께 가정 내 분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갈등을 완화하는 데 역점을 둔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가정법원은 지난해 7월부터 면접교섭실, 일명 ‘만남의 방’을 운영하면서 분쟁 당사자들 간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자녀의 친권이나 양육권 다툼이 많아지면서 자녀의 장래를 위해 판결보다 조정ㆍ화해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인식의 확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가정법원 홍창우 공보판사는 “가사사건의 특성상 표면적 내용만 보고는 분쟁의 근원을 쉽게 알기 어렵다”며 “조정절차를 통해 당사자의 진술을 충분히 듣고 갈등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한 뒤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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