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유언비어의 심리학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유언비어의 심리학

입력
2008.05.08 00:24
0 0

유언비어 또는 루머(rumour)는 민중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 입을 통해 전달되는 소문과 풍문이다. 일부러 퍼뜨리는 선동적 거짓선전, 데마고기(demagogy)와 같은 뜻으로도 쓴다. 유언비어는 소수의 사사로운 흥미나 관심에서 비롯돼 대중성이 없고, 반드시 날조나 거짓 정보를 뜻하지 않는다.

반면 특정 집단이 대중의 의식을 조작하기 위해 흔히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포하는 데마고기는 왜곡과 중상모략을 포함한다. 국어사전은 “유언비어는 사회가 혼란한 때 유포되므로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기만 하면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저절로 명쾌하다.

■고든 올포트 등의 ‘루머의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루머는 전파될수록 간단명료해진다. 최초 5~6명의 입을 거치면서 원래 메시지의 70%가 사라지는 대신, 특정 내용이 또렷해진다. 이어 왜곡된 내용을 그대로 믿거나 감정을 공유하는 동화(同化) 단계에 이른다. 이를 데마고기에 적용하면, 데마를 퍼뜨리는 데마고그는 가공의 인과관계나 사실의 왜곡을 교묘한 언어로 보충해 정치적 의도와 어울리는 방향으로 대중의 인지구조를 형성한다. 데마고기는 특히 사회 변동기나 사회경제적 불안으로 대중 사이에 잠재적 불만이 있을 때 쉽게 힘을 얻는다.

■대중은 데마고기에 논리적 비약이나 반증 가능성이 있는데도 불안한 심리 때문에 성급하게 결론을 받아들인다. 애매한 현실을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자구 노력이다. 인터넷 루머의 ‘사회적 인지구조’를 연구한 프레산트 보디아 등은 루머 전파를 ‘집단 설명과정’이라고 규정했다. 중요한 사회적 문제에 설명이 없거나 해결 전망이 흐리면, 대중은 스스로 문제 해결을 꾀한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얽혀 인터넷에 황당한 유언비어, ‘광우병 괴담’이 널리 유포된 원인도 이렇게 봐야 할 것이다.

■혼란 속에 엇갈린 진단과 처방이 난무한다. 정부와 보수언론은 촛불시위에 나선 어린 학생들을 나무라다 전교조 교사와 연예인들을 데마고그로 몰아붙인다. 반면 비판적 언론은 정부를 질타하면서 자신들과 공영방송이 ‘국민 건강권’ 수호에 앞장섰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유언비어 또는 데마고기가 전에 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은 정부는 물론이고 언론도 정확한 정보를 성실하게 전달하지 않은 때문이다. 사회 공적 기구가 저마다 딴 마음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각성이 필요하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