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착시(錯視)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부끄러운 일인 줄 알면서도 옳다고 외쳐야 하는 위선과 거짓이 아니고, 잘못된 일을 정말 옳다고 믿고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득실대는 착각과 착시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어느 분야보다 착시가 심한 곳이 정치다. 나라를 들먹이고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국민 눈에는 자기들만의 대화를 하는 정객(政客)으로 비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 정치를 외치지만, 내놓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특정계층 쪽으로 기운 경우도 흔히 본다.
문제는 그런 불일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위치와는 반대편에 너무 오랫동안 서있어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데도, 국민들이 충심을 몰라준다고 섭섭해한다.
서너 달 전으로 돌아가보자. 이경숙 당시 인수위원장은 영어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그 당위적 근거로 기러기 아빠를 들었다. “소위 기러기 아빠라는 이산가족 현상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영어 잘하기를 위해서 쏟아붓는 돈, 아빠는 한국에서 돈을 벌고 엄마와 자녀는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가는 희한한 생이별은 분명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도자의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위원장이 “우수한 시골 학생들이 경제적 이유로 좋은 영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면 어찌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박수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한 여권 인사는 “정치를 안 해봐서 말하는 방법을 몰랐다”고 평했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 위원장은 연간 미국으로 5,000만원 정도 송금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을 주로 만났을 것이기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기러기 아빠를 예로 들었다고 본다. 이게 바로 대외적 명분과 서있는 위치가 엇갈려 나타난 착시의 결과였다.
지금 세상을 들끓게 하는 광우병 괴담도 그렇다. 여권 인사들은 혹세무민하는 선동을 비난하고 심지어 좌파의 배후사주설까지 들먹인다. 맞다. 괴담은 괴담일 뿐 사실이 아닌 내용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것만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착시일 뿐이다. 괴담이 통하고 촛불 집회에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나오는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몇 달 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에 대해 그토록 완강하게 대처했던 정부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자마자 느닷없이 모든 것을 내줬다. 미국산 살코기를 수입하더라도 뇌, 척수, 눈, 두개골 등은 차근차근 들여와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불만을 가졌기에 국민들이 괴담에 동조하고 집회에 나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협상했는데 국민이 왜 이러느냐고 강변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한 몫 했다.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은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실언을 연상케 한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착시가 있는 발언이었다.
문제는 이런 착시를 교정할 방법이다. 결국 사람이다.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사고만 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정부, 코드 인사로는 착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방향은 같더라도 다른 위치에서 다른 사고를 하는 인재들을 구하는 이질혼합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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