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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학은? 韓·日 '리더십 총장'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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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학은? 韓·日 '리더십 총장' 대담

입력
2008.05.0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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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VS 가와구치 리쓰메이칸대 총장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과 가와구치 기요후미(川口淸史) 일본 리쓰메이칸(立明館)대 총장은 '리더십 총장'으로 불린다. 외부의 빠른 환경 변화를 잘 판단해 대학 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리더십은 전매 특허나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교수 학생 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유도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능력이 알려지면서 이 총장은 새 정부 출범에 앞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고, 가와구치 총장은 유력 언론에 의해 다른 대학 총장들이 가장 주목하는 총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두 총장이 한국일보 주선으로 2일 숙명여대 총장실에서 만나 '21세기 대학개혁과 현안'을 주제로 대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경숙 총장

"정보화와 국제화가 진전될수록 대학 경쟁력을 국가 경쟁력의 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은 사회 변화를 이끄는 지도자를 배출하고 지식을 산출하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 자신도 총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때로는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가와구치 총장께서는 21세기 대학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와구치 총장

"현대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는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따라잡기가 벅찬 것이지요. 특히 지식사회 및 글로벌 사회로의 변화는 가장 큰 흐름입니다. 대학이 사회의 중추 기능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대학도 변해야 합니다. 교육과 연구 역량 증대라는 기본 임무 외에도 인재양성을 위한 관리자로서의 역할에도 힘을 쏟을 시점이 도래했습니다."

이경숙

"대학이 필요로하는 학생, 사회가 요구하는 대학 상(象)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고교 졸업생의 83%가 대학에 입학할 만큼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처럼 많은 인적자원을 갖고 있지만 정작 사회나 기업이 필요로하는 인력은 크게 부족한 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한편으로 고급 인력에 대한 실업 증가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가와구치

"한국에 비해 일본의 대학 진학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50% 수준입니다. 요즘 경기가 좋은 덕분인지 일본 대학들의 졸업생 취업률이 크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희 대학도 지난해 졸업자의 98%가 구직에 성공했습니다. 4,5년 전만 해도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실업문제가 대단히 심각했습니다.

정규직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이나 '니트족'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일본 사회는 대졸 취업자와 고졸 취업자의 역할이 화이트 칼라 직종이냐 블루칼라 직종이냐에 따라 철저히 분업화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블루칼라의 일감 자체가 줄어드는 바람에 고교 졸업자들이 취업 통로가 막히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다는 것입니다.

다만 대학이 철저한 교육을 통해 인재를 사회로 배출하기 때문에 굳이 기업이 신입 사원에 대한 재교육이나 재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평생 학습이 필수입니다.

이것은 배운 지식이 점점 낡은 지식이 되고, 그러한 교육을 기업이 하지 않게 됨에 따라 대학의 몫으로 넘겨지고 있습니다. 기업은 더 이상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는게 일본의 분위기입니다."

이경숙

"취업률이 놀랍습니다. 리쓰메이칸 대학의 변화와 혁신, 교수님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어우러진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업들이 재교육을 안한다는 말씀은 대학의 교육프로그램이 그만큼 잘 돼 있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에 시사하는 부분도 상당히 큰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가와구치

"대학원 교육이 중요합니다. 이전에는 연구자를 키워내는 것이 대학원의 역할이었다면 앞으로는 직업 교육의 비중을 늘려야 합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나 비즈니스스쿨(경영전문대학원)처럼 직장에 들어가서 바로 쓸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대학원에 입학하는 구조가 아니라 직장에서 필요한 지식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경숙

"대학이 미래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이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숙명여대도 다른 대학과 차별화한 몇 가지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리더십을 갖추게 하기 위해 봉사 실적을 의무화했고, 여성질환 연구, 영어교사 전문가 과정, 전통문화 대학원 과정 등 이른바 블루오션 분야 개척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직업 교육을 강조하는 가와구치 총장의 교육관과 연관?있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화제를 바꿔 보겠습니다. 숙명여대와 리쓰메이칸대는 자매 학교라는 인연 외에도 공통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1990년대 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고, 한국과 일본 대학을 대표하는 변화의 선두주자라는 세간의 평도 있습니다.

역대 총장들의 뚜렷한 비전과 리더십을 토대로 대학 구성원들이 변화와 혁신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기 때문에 이뤄낸 성과일 것입니다. 대학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비결은 무엇입니까."

가와구치

"일본 대학들은 교수회의 권한이 막강합니다. 법률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어찌보면 대학은 교수들의 연합체와 같지요. 교수회가 동의를 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추진하기 힘듭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다소 특이한 대학입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 책임과 관련, 폐교설까지 나돌던 상황에서 당시 스에카와 히로시(末川 博) 총장이 총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면서 재건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학생을 섬기는 자세가 총장 리더십의 근간이었기 때문에 대학 구성원들이 공감했지요. 우리 대학은 총장과 이사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회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총장이 학부 및 학과 신설, 교과 커리큘럼 개편 등을 제안하면 교수회가 함께 논의하는 구조입니다. 총장과 이사장 직속으로 있는 조사기획실에서 사회 현안이나 내부 자원 현황 등을 파악해 장기 계획을 수립합니다. 저도 기획실 출신이지요. 관건은 계획 추진에 따른 재원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국제화 대학인 아시아태평양대학(APU)을 설립할 때 기업들로부터 43억엔(약 415억원)을 기부 받았습니다. 벳푸(別府) 캠퍼스 부지 60만㎡도 지방자치단체에서 무상으로 지원해 줬습니다."

이경숙

"기부금 모금에 필요한 교섭력과 행정력 등 뛰어난 수완을 지닌 가와구치 총장의 리더십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사를 나누면서 이사장과 총장을 겸하고 있는 명함이 이채로웠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요.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이 각종 정책을 소신껏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의 원천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가와구치

"현재 일본의 대학들은 법인화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학장과 이사장을 겸하는 시스템이지요. 와세다(早稻田)나 게이오(慶應)와 같은 유명 대학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쓰메이칸대는 20년 전부터 이사장은 재정, 총장은 교육을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이 분담돼 있습니다. 이사회가 3명의 총장 후보를 지명하면, 교수 교직원 졸업생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투표를 통해 총장을 선출합니다."

이경숙

"재정 확보 방안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대학이 비전을 실현하려면 국가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우 사립대는 정부가 지원하는 부분이 전체 재정의 3~4% 수준입니다. 일본은 어떻습니까."

가와구치

"국립대는 재정의 50~60% 가량을 정부가 부담하고, 사립대는 10% 수준입니다. 연구비는 경쟁 시스템에 의해 별도로 받지요. 한 때 국회에서 사립대 재정도 국립대 수준으로 정부가 보조해주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사립 대학들의 가장 큰 불만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경숙

"올해 출범한 한국의 새 정부는 대학 자율화를 기치로 내세워 실천 중에 있습니다. 대학 자율화에 있어서는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정도 진전됐습니까.

(가와구치 총장은 자율화의 의미를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이 총장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 뒤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생 선발 대학 일임 등 새 정부가 추진중인 각종 규제 완화 정책들은 일본에서는 대학, 특히 사립대의 경우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가와구치

"일본 대학은 학생 선발에서부터 대학의 권한이 따로 있습니다. 국립대는 대학입시센터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치러야 해 일정 부분 국가가 간여하지만, 사립대는 완전 자율에 맡겨져 있지요. 오히려 너무 자유로워 입시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사립대끼리 공통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경숙

"자율화라는 용어가 생소할 만큼 일본 대학들은 폭넓게 자율성을 인정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시 입시 응시료이나 용도에 대한 지침은 없습니까."

가와구치

"일본에서 검정료라고 부르는 입시 응시료도 대학이 알아서 결정합니다. 리쓰메이칸대의 경우 검정료가 보통 3만5,000엔(약 34만원)인데, 한 해 10만명 정도 응시해 연간 30억원에 가까운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용도에 제한도 없습니다. 정원이나 학교 신설 문제 등 그나마 남아있던 규제도 풀린 상태입니다."

●이경숙 총장은

숙명여대의 현대사는 이 총장의 역사라 할 만하다. 본교 출신으로 교수를 거쳐 총장에 이르기까지 이 총장은 반세기를 숙대와 함께 했다. 그가 1994년 총장에 취임한 이후 숙대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숙대의 홍보 문구 중 '울어라 암탉아'라는 부분이 있다. 14년간 3차례 연임한 이 총장은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조용한 여대 이미지에 머물던 숙대를 공격적인 학교로 확 바꿔놓는데 성공했다.

1,000억원이 넘는 기부금 모금, 적극적인 대외 홍보, 특성화한 커리큘럼 도입 등 새로운 비전 제시가 여성 인재 산실의 밑바탕이 됐다. 오랜 총장 경력과 활발한 대외 활동을 인정받아 새 정부 출범직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활약했다.

▲1943년 서울 출생 ▲65년 숙명여대 정외과 졸 ▲75년 미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정치학 박사 ▲76년 숙명여대 정외과 교수

▲81년 제11대 국회의원 ▲94년~현재 숙명여대 총장

●가와구치 총장은

일본 대학 개혁의 선두 주자로 손꼽힌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매년 발표하는 〈대학랭킹〉2009년판에서 도쿄(東京)의 유명 대학들을 제치고 '총장들이 가장 주목하는 총장' 1위에 뽑히기도 했다. 리쓰메이칸대 총장을 맡으면서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해 이 대학을 단시일 내에 명문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가 선택한 대학 개혁의 방향은 국제화였다. 2000년 규슈(九州) 벳푸(別府)시에 설립한 아시아ㆍ태평양대학(APU)은 일본에서 대학 국제화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문ㆍ이과 융합 프로그램, 대학과 지역사회의 협력 등은 다른 일본 대학들이 새로운 교육 방식이다.

▲1945년 고치(高知)현 출생 ▲ 74년 교토(京都)대 경제대학원 졸▲76년 리쓰메이칸대 조사기획실장 ▲95년 교토대 경제학 박사 ▲2007년~현재 학교법인 리쓰메이칸대 총장

정리= 김이삭기자 hiro@hk.co.kr사진=조영호 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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