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독일 고전주의파 시인이자 극작가 프리드리히 폰 쉴러의 유골을 둘러싸고 180년간 계속된 진위 논쟁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혔다.
쉴러의 것으로 추정돼온 2개 두개골이 3일 발표된 유전자(DNA) 감정 결과에서 모두 가짜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dpa 통신 인터넷판이 4일 전한 바에 따르면 쉴러의 두개골로 알려졌던 이들 유골의 DNA 검사는 바이마르 고전주의 재단과 중부독일방송(MDR)의 공동 프로젝트로 실시됐다.
문제의 유골들은 모두 바이마르의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것으로 이번 검증이 사망한 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개된 치열한 논란을 끝내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MDR은 이들 두개골의 DNA가 쉴러의 직계와 모계 어느 쪽과도 일치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인류학자와 감식 전문가들은 3월 말 쉴러 가족의 무덤을 열고 쉴러의 장남인 카를과 손자 등 세 사람의 유해에서 시료용 DNA를 채취했다. 쉴러의 유골을 둘러싼 논란은 그가 바이마르에서 사망한 후 21년이 지난 1826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바이마르 시장은 쉴러의 무덤이 있던 공동묘지에서 23기의 유골을 수습하면서 이중 가장 큰 두개골을 쉴러의 것이라고 지목한 뒤 독일의 대문호 괴테에게 보냈다. 문제의 두개골은 쉴러의 생전 모습에 상당 부분에서 일치됐다. 이 유골이 쉴러의 것으로 사실상 공인되자 문학 애호가들에 의해 '18세기 천재의 두개골'로서 숭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1911년 같은 공동 묘지에서 또 다른 유골이 발굴되고 이 유골이 쉴러의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어느 쪽이 그의 두개골인지를 놓고 의견 대립이 가열돼 왔다.
검사는 2006년 두개골에서 추출한 DNA를 쉴러 자손의 것들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쉴러의 유물을 보존해온 바이마르 재단의 율리아 크레스네르 대변인은 "DNA 검사를 통해 두개골들이 쉴러의 것이 아니라고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1759년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마르바흐 암 넥카르에서 태어난 쉴러는 만년에 극작에 전념, <발렌슈타인(wallenstein)> 3부작을 1799년 탈고하고 민족극 <빌헬름 텔> 을 1804년 완성한 뒤 1805년 5월 바이마르에서 타계했다. 극작가와 시인으로서 명성 말고도 쉴러는 불후의 명곡인 베에토벤의 교향곡 <환희의 합창> 작사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환희의> 빌헬름> 발렌슈타인(wallenstein)>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