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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 일시 귀국/ "우리 재판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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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 재판관 일시 귀국/ "우리 재판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입력
2008.05.0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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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사법부의 글로벌 스탠다드 확보는 필수적입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의 재판을 진행했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권오곤(55) 재판관은 국제무대에서 6년 반 동안 '세계 정의의 심판관'으로 활동한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2006년 밀로셰비치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재판이 사실상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휴정을 틈 타 일시 귀국한 권 재판관을 2일 만나 국제사법 질서와 우리 사법제도 및 현실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왜 사법부의 글로벌 스탠다드인가.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은 별 고민없이 한국측 손을 들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재판을 받으면 한 푼도 못 건진다는 인식이 퍼지면 어느 외국기업이 투자를 하려고 하겠는가. 그 나라 법원이 얼마나 투명하게 법대로 판단하느냐는 문제는 이제 외국 기업의 투자판단에서 첫 번째 요인이 되고있다."

- 최근 우리도 사법환경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나.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서 추진하는) 공판중심주의와 구술주의 모두 옳은 방향이다. 법원의 신뢰회복이 목표가 돼야 한다. 실로 재판관이 아무리 밤새워 고민하고 훌륭한 재판을 해도 국민이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면 법원의 권위는 없다. 보석결정만 하더라도 아무런 판단없이 달랑 '이유없음'이라는 결정문 하나만 낸다면 누가 납득을 하겠는가."

권 재판관은 특히 우리 사법현실에 부족한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령 고등법원의 경우 합의부 3명의 판사 가운데 재판장과 주심판사 2명이 결정을 내리고 다른 배석판사는 사실상 배제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대법원조차 합의부 사건에서 주심 재판관의 설명이 특별히 이상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은 합의라고 할 수가 없다"고 지적한 그는 과도한 재판부담도 한 요인이라며 상고허가제 등의 해법도 제시했다.

상고허가제는 대법관의 과중한 업무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상고사건을 미리 검토해 대법원 심리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로 1990년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 대법관 증원 등 대법원 개혁 논의도 있는데.

"대법원은 모든 사람, 억울한 사람을 풀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1심과 2심이 불안하니까 대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아봐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데 1, 2심의 내실화가 우선이다. 전심의 법률적용이 옳은지를 판단하고 재판의 방향을 제시하는 게 대법원의 존재이유다."

- 국민참여재판은 어떻게 보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 사법질서에는 그런(전문 법률가가 아닌 일반인이 배심원이 되는) 전통이 없기 때문에 제도가 맞을지, 전반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단계라고 하니 많은 사례들을 축적해서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권 재판관은 사법부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글로벌 커뮤니티를 향해 오픈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검찰 심문조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영미법 질서 속에서) 증인은 넘쳐나고 일일이 증인심문을 받을 수 없어 반대심문까지 포함해 검찰조서를 받자고 다른 재판관을 설득해 결국 소송규칙까지 고쳤다"는 그는 "국제사회 진출을 계기로 우리 사법절차를 수출하는 성과도 올렸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사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는 아직 크게 부족하다.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한국인을 3년간 연구관으로 데리고 있다 추천서까지 써 줬지만 국내 로펌에서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비즈니스와 상관없는 국제사법 전문가를 활용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을 외치면서도 정작 국제 경험을 가진 인재는 받아들이지 않는 셈이다."

- ICTY 활동의 보람은.

"전범 재판으로는 2차 대전 직후 뉘른베르크 재판과 극동군사재판(일명 동경재판)에 이어 3번째지만 승자의 정의에 근거하지 않고 국제평화를 담보하는 유엔의 결정으로 제3자의 정의를 심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CTY의 판결이 향후 국제인도법이나 국제형사재판에서 판례로 인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법 발전이 기대된다."

- 재판에 어려움은 없었나.

"4년 동안 매일 재판을 했던 밀로셰비치 건만 해도 증인이 150명이었다. 세르비아 알바니아 보스니아 등 증인의 국적도 제각각 인데다 말을 바꾸고 출석을 해도 증언을 안 해주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증거확보 하기가 제일 어려웠다. 더구나 중도에 밀로셰비치가 사망하는 바람에 충격이 컸다."

- 의사소통 문제는 없나.

"재판소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법관들이 동시통역되는 채널을 각자 선택해서 심문내용 등을 듣는다(권 재판관은 영어를 선택하고 있다).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판사 2명과 함께 재판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때가 다소 힘들었다."

■ 권오곤 재판관은

대구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2001년 유엔총회를 통해 14명을 뽑는 ICTY 재판관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05년 재선에 성공해 2009년 11월까지 4년 임기를 다시 보장받았다.

하지만 그는 "임기종료 전 사퇴할 경우 전임자 국적 재판관을 후임으로 지명하는 규칙을 감안해 후배 법관들에게도 국제무대 활동 기회를 주기 위해 이번 재판만 끝내고 임기 전에 돌아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귀국한 뒤에는 국제재판의 경험과 함께 외국 사법기술을 국내에 소개하는 활동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ICTY는 구 유고 전범으로 기소된 160여명 가운데 120여명을 처리하고 40여명의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권 재판관은 영국 자메이카 출신의 재판관과 함께 국가원수에 대한 첫 국제형사재판으로 관심을 모았던 밀로셰비치 재판을 직접 담당했다.

그는 평소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행해지고 있다고 보여져야 한다(Justice should not only be done, but should be seen to be done)"는 법언(法諺)을 강조한다. 판사 개인이 객관적으로 독립되고 공평할 뿐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그렇게 보여야 할 때 사법의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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