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딸 녀석이 아픈 모양이다. 시집간 큰 딸이 꿈에 혼자 독립해 사는 동생이 보였는데 안 좋은 느낌이 들어 전화 했더니 목소리가 다 죽어 가더라고 했다.
그런데 동생이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고소하다고 할까 봐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어도 내색도 못했다”고 하더란다. 큰 딸의 보고전화를 듣고 있노라니 맘이 너무 아팠다. “바보 같은 녀석, 그러길래 왜 다 늦어서 독립을 하겠다고 했는지…. 독립해서 엄마 아빠 그늘을 벗어나 자유로이 살면 떼돈 벌고 펄펄 신날줄 알았던 모양이지? 아파 봐라, 엄마 생각 아빠 생각 집 생각, 얼마나 나는지.” 그 녀석이 아프다는 말에 엄마 품을 그렇게 떠나려 하던 얄미운 기억이 되 살아나 ‘쌤통’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 눈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두 살 터울인 큰딸과 작은딸은 한 뱃속에서 나왔는지조차 갸웃할 정도로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어려서 연필을 잡고 글씨를 흉내 낼 때도 큰 녀석은 행여 틀릴까 엄마 손만 기다렸던 반면, 작은 녀석은 엄마가 연필을 잡을라 하면 성질을 내며 제멋대로 죽죽 그어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열심히 하는 큰 애보다 매일 노는 것 같은 작은 애가 공부는 월등하게 잘했다. 큰 애는 조용조용하고 순해빠져 걱정이었으나 작은 놈은 시끄럽고 사고를 자주 쳐 내가 몇 번이나 학교에 불려갔던지. 사춘기도 큰 애는 거의 모르고 지나갔으나 작은 놈은 너무나 유난을 떨었다.
그런데 ‘열 가지 다 잘하는 놈 없다’는 옛말대로, 착하기만 한 큰 녀석이 22살에 첫 남자친구와 결혼 하겠다고 엄마 아빠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애 아빠가 가두기도 했지만 큰 애는 제 성격대로 아주 차분하게 우리 부부를 설득해 결국은 자기 승리로 이끌었다. 그렇게 큰 딸을 일찌감치 출가 시키고 나서 우리 부부는 작은 딸에게 모든 정을 쏟아 부었다.
우리 부부가 다 직장을 다니는 지라 솔직히 그 녀석 덕도 많이 보았다. 종종 걸음으로 퇴근해 주방에 들어서면 전기밥솥에 밥이 다 되어 있고, 세탁기도 돌아가곤 했다. 기뻐하는 엄마를 보는 게 좋았던지 매일 일찍 집에 와 살림을 맡아 하다시피 했다. 나는 그렇게 딸이 도와주는데 슬슬 재미가 붙어 급기야는 은근히 더 바라기까지 했다. 제 할 일을 다하고 집안 일까지 도와주는 신통방통한 작은 딸은 내가 힘겨워 지칠 때 위로도 해주는 친구까지 돼 주었다.
아무튼 그런 작은 딸이 대뜸 독립을 외치는 바람에 난 두 번째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이 무서운 세상에 여자가 어찌 혼자 사느냐”며 협박도 하고 어르고 달랬다. 하지만 그 녀석은 조용조용하게 시간을 갖고 우리를 설득시킨 큰 딸과 다르게 “그 동안 밥도 잘하고 살림도 잘하고 다 잘해오지 않았느냐. 엄마 아빠도 만족해 하지 않았느냐”고 조목조목 따져가며 우리 부부의 입을 원천봉쇄했다.
그 녀석의 말이 맞기는 했다. 내가 의지할 만큼 살림도 곧잘 했고 지금껏 제 스스로 알아서 잘 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꾸 엄마 아빠의 보호막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기막히게 서운해 몇 대 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한달 가량 싸운 끝에 이번에도 결국은 딸의 승리였다. 다들 어찌 그리 고집이 센지. 그렇게 두 딸이 모두 우리 부부의 품안을 벗어나 버렸다.
작은 딸마저 나간 뒤 처음엔 집에 들어와 느껴지는 적막함이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던가. 벌써 석 달이 지나다 보니 이젠 익숙해졌다. 남편은 “직장 생활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해 먹을 것”이라며 내게 반찬 좀 가져다 주라고 하지만 난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디 너 혼자 잘 해먹나 보자’하는 심통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은 녀석이 아프다는 전화를 받고 나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 딸한테 이겨서 뭣에 쓰나. 미워도 내 배로 낳은 자식인데….’ 엄마가 고소해 할까 봐 전화를 안 했다는 작은 녀석의 얘기에 후회가 밀려들었다.
결국 난 곧장 집 앞 ‘마트’로 가서 작은 딸이 좋아하는 꽃게부터 몇 마리 사고, 겉절이를 담기 위한 재료도 샀다. 부랴부랴 음식을 준비하느라 급한 마음에 간이 제대로 됐는지도 헷갈렸다. 정신없이 음식 준비하는 나를 보고는 남편은 혀를 쯧쯧 찼다. 그러면서도 “어서 준비해서 작은 녀석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하자”고 거들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작은 딸을 위한 만찬을 준비해 그 녀석이 독립해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큰 딸에게 전화를 걸어 “너도 동생 집에 와서 같이 먹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우리 네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사위와 손자들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같이 모인 느낌이 참 좋았다. 작은 딸은 엄마 아빠를 보자마자 그 동안 아팠던 것이 서러웠는지 왈칵 안겨서 펑펑 울었다. 그리고 나선 대뜸 “근데 엄마. 뭐 해 왔어?”하고 물었다. 그 한마디에 울컥하며 올라오던 눈물이 웃음으로 싹 바뀌었다. 허겁지겁 게를 뜯어 먹는 작은딸을 보고 있노라니 싸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러게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니….’큰 딸에게도 게살을 발라주었다.
그날 우리 네 식구만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그 동안 못 맡아본 딸 녀석들의 살 냄새를 실컷 맡았다.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예전엔 잠들기 전에 항상 엄마 냄새를 맡곤 했는데, 이제 내 곁에서 홀로서기하는 딸들의 냄새를 그리워 하고 있으니 나도 늙기는 참 많이 늙었나 보다.’
그리고는 또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앞으로 작은 녀석도 시집 보낸 뒤 또 많은 시간이 흘러 먼 훗날, 아주 먼 훗날에는 남편의 냄새를 그리워 하는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임옥임 - 충남 아산시 선장면 홍곳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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