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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피부 자아' 피부는 나와 세상 사이 경계, 그 심리학적 의미를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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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피부 자아' 피부는 나와 세상 사이 경계, 그 심리학적 의미를 파헤치다

입력
2008.05.0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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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앙지외 지음ㆍ권정아 등 옮김/인간희극 발행ㆍ432쪽ㆍ1만9,800원

노래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영어의 관용 어구 중에 ‘I’ve got you under my skin’이라는 게 있다. 직역하면 ‘나는 당신을 내 살갗 속에 가뒀다’라는 이상한 문장이 되지만 ‘당신에게 홀딱 반했다’라는 뜻으로 널리 통한다. 당신은 피부를 통해 나의 내면으로 삼투할 수도, 피부라는 장막에 막혀 외부에 머물 수도 있다. 대수롭지 않게 쓰이는 말이지만, 외계와 자아를 가르는 얇은 막으로서 피부가 갖는 중요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바로 그 지점에서, ‘피부 자아’란 심리적 개념이 도출된다.

“자아는 피부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디디에 앙지외(1999년 76세로 사망)는 신개념 ‘피부 자아(moi-peau)’로 정신분석학과 임상심리학 분야에서 일대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첫 소개되는 이 책은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나누는 ‘경계’이자 ‘심리적 싸개’로서 피부의 심리학적 의미를 마르시아스 등 신화와 임상 사례를 통해 밝혀준다. “피학증적인 성행위 혹은 도덕적이고 피학증적인 태도는 아주 어린 시절 피부에 실제로 상처를 입었던 경험과 연관된다.”(85쪽)

앙지외는 정신분석학의 거두 라캉과의 악연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어머니는 불행한 가족사 때문에 정신 병원에 격리됐는데, 당시 그녀를 담당한 의사가 바로 라캉이었던 것. 그러나 라캉은 그녀를 치료하기는커녕 분석 사례로 논문에 이용, 박사가 됐다.

뒤늦게 그 일을 알게 된 앙지외는 1964년 프랑스정신분석협회를 창립, 반라캉 운동에 나섰다. 라캉은 언어학 철학 등의 영역을 정신 분석에 적극 도입한 반면 앙지외는 영미권의 실용적 이론을 프랑스에 적극 도입하는 등 두 사람간의 학문적 대립에는 바로 그 같은 악연이 있다는 호사가들의 얘기다.

그러나 냉철한 라캉과는 달리 앙지외는 인간적 냄새가 배제되기 십상인 과학의 세계에서 인간의 온기를 실천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정신 분석은 내면의 상처를 헤집는 게 아니라, 그것을 감싸주고 공감해 회복의 길로 이끄는 작업이었다.

파리 제7대학 심리학과에 다니며 책을 옮긴 권정아ㆍ안석 부부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예술이나 종교 비평의 영역에서 더 활약이 큰 정신 분석을 정신 의학이나 심리학 등 본래의 영역으로 돌려 놓은 책”이라며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정신 분석 용어를 번역하기가 힘들었다”고 밝혔다. 이 책의 출간 20주년인 지난해 파리에서는 심리학계의 거장들이 모인 가운데 대규모 학술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본격 소개된 피부 자아라는 개념이 극적으로 형상화된 예가 영화로도 성공한 소설 <양들의 침묵> 이다. 사람의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든 뒤, 그 옷을 입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정신 병자의 욕망은 피부 자아라는 개념을 빌지 않고서는 명확히 설명할 길이 없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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