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금요일은 노동과 생산의 시간이다. 주말은 휴식과 소비의 시간이다. 바쁜 평일이 지나면 주말에는 여유 있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게 일반적이다.
여기 그런 통념을 깨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주말은 평일처럼 바쁘다. 몸은 힘들지 몰라도 그들의 마음은 풍성하고 행복하다. 그들은 재충전의 에너지를 나눔과 봉사에서 찾는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삶으로 주말을 아름답게 만드는 이들의 삶을 매주 토요일 만나본다.
경기 의왕시에 사는 김모(42)씨는 토요일이 다가올수록 달뜬다. 중추신경 마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매주 토요일 찾아주는 소중한 '친구' 때문이다. 그 친구는 10년째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찾아와 아픈 곳을 쓰다듬어 주고 말동무도 돼준다. 10년 전 퇴근길 교통사고로 갑자기 찾아온 장애에 좌절한 나머지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하던 김씨는 그 친구 덕분에 삶에 희망을 되찾았다.
김씨가 사는 아파트에서 10여km 떨어진 주택가에 사는 최모(60ㆍ여)씨는 석달 전 '아들'이 한 명 생겼다. 이 아들은 뇌졸중과 간경변 복합증상으로 쓰러진 남편 이모(63)씨를 매주 찾아와 굳은 팔 다리, 허리를 풀어준다. 최씨는 남편 병수발을 도맡다시피 해주고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자신의 다리까지 돌봐주는 아들을 보면 "진짜 아들을 얻은 기분"이라고 한다.
경기 의왕시보건소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는 한상덕(45ㆍ의료기능직 8급)씨가 바로 그 '친구'이자 '아들'이다. 겨울에도 반팔 셔츠를 입을 정도로 혈기왕성하고 항상 웃는 얼굴인 그는 매주 토요일 재가(在家) 장애인과 노인들을 상대로 12년째 물리치료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개인병원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던 한씨가 1996년 의왕시보건소 일용직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94년 태어난 딸 예은이를 위해 올린 기도 때문이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된 예은이가 폐혈증으로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기독교 신자인 한씨는 "예은이만 살려주시면 남은 생을 아픈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기도'를 올렸고, 기도를 올린 뒤 예은이가 건강을 되찾자 '하나님과의 약속'을 실천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8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보건소에서 환자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한씨는 거동이 불편한 중증환자들이 통근치료를 받기 힘든 현실을 접하게 됐다. 제대로 치료만 받으면 환자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리란 생각에 97년부터 직접 차를 몰고 환자 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환자들이 그의 진심을 받아주지 않아 고민도 컸지만, 한번도 봉사를 거르지 않는 그의 성실함과 서글서글한 성격에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도 열리기 시작했다. 보건소에 한번 들렀던 환자를 통해, 때로는 입소문으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지금까지 그가 물리치료 봉사를 한 환자는 6,520명에 이른다.
방문 치료를 원하는 환자가 늘어난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힘 부족'을 절감했다. 환자들은 대부분 운동치료가 필요한 데, 운동치료는 환자 1명당 50분~1시간이 걸려 하루에 3~4명 돌보기가 벅찼다. 하루를 더 늘려 봉사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박봉에 차비 한 푼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과거 일했던 개인병원에서 월급을 두세 배 주겠다고 제안해 와 고민도 해봤지만 한씨는 봉사의 길을 택했다.
그러던 중 희망이 찾아왔다. 98년 의왕시보건소에서 장애인치료 교육을 주제로 강연을 한 황병용 용인대 물리치료학과 교수가 한씨의 선행을 듣고 참여키로 한 것이다. 황 교수는 매주 학생들을 보내 한씨를 돕게 했고, 학생들도 열과 성을 다해 '실습과 봉사'에 참여했다. 한씨는 요즘 매주 학생 20여명의 도움으로 토요일마다 20명 남짓한 환자를 돌볼 수 있게 됐다. 한씨는 "물리치료학과를 둔 전국 50여 대학이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한다면 더 많은 재가 장애인과 중증 환자들이 더 나은 의료 서비스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2001년 기능직 공무원으로 신분이 전환됐다. 하지만 보다 안정된 신분으로의 전환은 오히려 그에게 채찍이 됐다. 한씨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그럴 겨를도 없다"고 말했다.
봉사의 기쁨이 아무리 크다 해도 아이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지 못하는 건 아빠로서 미안한 일이다. "가끔 아이들이 '주5일 근무라면서 아빠는 왜 항상 바쁘냐'고 투정해요.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보람 있고, 좋은 일인지 말해줍니다. 묵묵히 남편 일을 지지해주는 아내에게 제일 고맙죠."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제 별명이 '오뚝이'인데 환자들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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