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이 ‘쇠고기 반란’을 일으켰다. 10대들이 정치ㆍ경제ㆍ사회 이슈에 무관심할 것이라 생각하던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은 보기좋게 깨지고 말았다. 2, 3일에 이어 5일에도 이어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10대들이 주도했다.
그들은 단상에서 어느 세대보다 가장 활발히 발언하고, 랩과 춤으로 집회의 흥을 돋우었다. 사회학자들은 정치ㆍ사회적 무관심 세대로 분류되던 과거 10대와 달리 자신과 관련된 ‘생활정치’문제에서만큼은 제 목소리를 내는 ‘신인류’의 탄생으로 이어질 지에 주목하고 있다. 과연 청계광장에 나선 10대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을까.
■ ‘나의 생명’과 직결된 이슈에 적극
10대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적극 참가한 것은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와 ‘문제’가 되면 자신들이 첫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실제 인터넷 상에서는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학교 급식과 군대 배식에 쓰일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5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우모(16)군은 “광우병이 몇 년 잠복 기간을 거쳐 우리가 20대, 30대가 됐을 때 발병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불안감을 더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항의하기 위한 ‘생활정치’의 대열에 나서게 한 동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때는 왜 ‘행동하는 생활정치’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전문가들은 한미FTA는 매우 복잡다단한 이슈였던 반면, 쇠고기 개방 문제는 아주 단순명료하다는 점을 차이점으로 꼽고 있다.
■ 경쟁과 서열 만능 교육정책에 불만
그렇다면 왜 10대들의 입에서 ‘이명박 탄핵’구호가 터져나왔을까. 전문가들은 10대들이 ‘경쟁과 서열’을 중시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누적된 불만들이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계기로 분출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쓰린 경험을 했던 이들이 향후 4, 5년에 걸쳐 변화할 새 교육정책에서 또한번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10대들은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영어 몰입교육, 0교시 부활, 학원까지 동원하는 방과후 수업, 자립형 사립고 설립 추진 등 교육 패러다임을 이렇게 빠르고 크게 뒤흔든 정권은 없었다”며 “경쟁과 서열이 최우선이라는 분위기 속에 억눌려 있던 10대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카페 ‘2MB 탄핵투쟁연대’에서 활동하며 집회를 이끈 아이디 ‘안단테’ 학생(고2)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현 정권은 학생들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학생들이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면서 0교시까지 부활해 몸과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있다”며 “더 이상 가만히 앉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10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경제 살리기’공약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정 경제’상황도 정권에 대한 불만을 가중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물가는 오르고,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고, 사교육비 부담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 커지는 상황에서 이들도 경제 불황의 간접 피해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모(18)군은 “경제를 살리겠다던 대선 때 약속은 온데 간데 없고 부모님들은 여전히 한숨만 짓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무장한 ‘가벼운 세대’
이들에게는 인터넷과 휴대폰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중학생 심모(14)양은 “하루에 친구들과 문자메시지를 수십 번 주고 받으며 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며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디지털기기를 통해 얻게 된 정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은 ‘생활정치’이슈에 대한 그들의 ‘순수한’접근에 비해 ‘사고’의 완성도나 균형감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0대들은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따르는 대중문화 스타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발언을 그대로 퍼나르며 다른 10대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바빴다.
차모(16)양은 “교과서나 기성세대의 백마디보다 그들의 한마디가 우리에겐 파급력이 백배 더 크다”고 말했다. 대입 논술의 영향으로 사회 현안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주장을 만들어 내는 학습을 받긴 했지만 작은 자극에 쉽게 휘말리고 동조해 버리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10대의 모습을 그대로 노정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생활정치’에 눈뜬 10대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주려는 기성세대들의 노력이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기성세대가 10대들을 아이로만 봐왔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지 못한 잘못이 크다”며 “10대들이 적극적이고 건강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건강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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