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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토종 종자개량의 경제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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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토종 종자개량의 경제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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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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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담는 그릇을 씨 오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씨 오쟁이에 들어가는 알곡은 추수한 곡식 중에 아무것이나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수확기가 되면 가장 충실한 열매들이 달린 이삭을 따로 수확하여 씨앗용 알곡들을 정성스레 골라 씨 오쟁이에 담아 보관 하였다가 다음해 씨앗으로 이용한다. 우리 선조들이 유전학적 지식이 있어서 그렇게 씨앗을 중히 여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좋은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게 할 것”이라는 직관적 생각에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이 생각은 동서양이 공통적이었다. 서양에서도“좋은 아비가 좋은 새끼를 낳는다(like begets like)”는 속설이 있고 이 속설이 종자 개량의 원동력이 되었다.

산업 사회에서는 이와 같이 직관에 의한 행동이 때때로 학문을 앞서서 나갔다. 가축의 개량도 마찬가지이다. 근대 유전학이 시작된 것은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된 20세기 초이고, 이를 근간으로 가축 개량을 위한 가축 육종학이 시작된 것은 2차 대전 직전이었다. 그러나 실질적 가축개량이 시작된 것은 18세기 중엽이다.

영국의 베이크웰이라는 사람이 시작하여, 영국이 가축 개량의 최선진국이 되고 종자 가축의 수출로 막대한 국부를 창출하였다. 오늘날각종 가축의 품종 이름이 영국의 지명과 같은 것은 그 지방 재래종을 주축으로 개량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이 종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그 시원이 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 하지만 가축 종자의 개량에 관한 인식은거의 없었고 일제가 물러가고 한국전쟁의 와중에 외국 품종이 무분별하게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토종 돼지와 닭이 거의 사라졌다.

1861년 덴마크의 프로쉬 교수는‘품종은 토양의 산물’이라 하여 토종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들이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과 연계하여 이르는 신토불이와 다르지 않다. 재래의 닭과 돼지가 사라지고 논밭 갈이용으로 사용하던 한우도 경운기가 도입되면서 그 용도가 모호해져 가고 있었다. 그때 한우마저 돼지나 닭과 같은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하여 당시 농촌진흥청 축산연구소를 중심으로 한우의 개량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 80년대 초의 일이다.

그러나 가축의 개량은 금 나와라 뚝딱 하면 되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 아니다. 가축 개량은 서서히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가는 마라톤과 같은 작업이다.덕분에 1995년도 한우 체중이 491kg이었던 것이 2005년에 564kg이 되었다. 11년 동안 18개월령 체중이 74kg 늘었고 이는 매년 6.6kg씩 개량된 셈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송아지가 약 70만두이고 이들이 모두 6.6kg씩 개량되었다면 이는 18개월에 4,220톤을더 생산했다는 것이 된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370억원의 가치에 해당한다. 이는 2005년에는 1995년에 비해 동일한 노력으로 약4,000억원을 더 생산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종자 개량은 비록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 같지만 실은 누적적으로 가치가 늘어나는 일이다. 더욱이나 신토불이의 우리 토종을살리는 일이기에 사명감도 따른다.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씨 오쟁이에 씨앗을 정성스레 담아 신토불이 토종의 명맥을 이어 온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내수 충북대 농업생명환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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