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6시 서울 청계광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시위와 달리 교복을 입은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이 유난히 많았다. 오후 7시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참여자는 1만여명까지 육박했는데 절반 이상이 중고생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이번 여론은 과거 주요 사회 이슈가 터졌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태로 번져가고 있다. 기성세대가 아니라, 10대 중고생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3일 저녁 열린 행사에도 2만여명이 촛불을 들었는데, 이 가운데 60~70%는 중고생”이라고 말했다.
시위대가 촛불을 들었다는 점에서 2002년 ‘미선ㆍ효순양 촛불추모’ 집회와 비교되지만,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중고생 때문이다. 2002년 집회가 다분히 반미(反美)라는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다면, 중고생들의 미국 쇠고기 반대는 정치적 이유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중고생을 거리로 불러낸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쇠고기가 수입될 경우 자신들이 직접적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미국 쇠고기가 수입되면, 군대와 학교가 가장 큰 수요처가 될 것이 뻔한데 막아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실제로 2일 집회에 참여한 정모(19ㆍ고3)군은 “살고 싶어서 나왔다”며 “입시보다 당장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매일 급식을 먹는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아이돌 스타들을 광우병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도 중고생을 움직인 요인 중의 하나다. 동방신기 팬클럽 회원 중 일부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일본과 유럽 국가는 광우병을 우려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게 되며, 결국 동방신기의 컴백은 이뤄지지 못한다”며 다른 회원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수성 예민한 중고생들이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의 연관성을 극도로 강조하는 편파적 정보에만 빠져, 결과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고 호주산 쇠고기만 먹는다’, ‘광우병 쇠고기가 냅킨과 세척제 등에 오염돼 빠르게 전염될 것이다’ 등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져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고생들은 또 잘못 알려진 광우병 관련 정보를 인터넷이나 휴대폰 메시지로 친구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지모(15ㆍ고1)양은 “집회 전날 ‘미친 소 막기 시위 있습니다. 참석해주세요’라는 문자를 받고 나왔다”고 말했다. 촛불문화제를 주최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당초 300여명 정도만 예상했는데, 학생들이 몰려들어 그 규모가 30배나 많아졌다”고 놀라워했다.
진보진영에서 조차 이상 열기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논리가 과장된 측면이 있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젊은 사람들의 움직임도 과열돼 있다”고 말했다.
허정현 기자 xscope@hk.co.kr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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