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4일 스페인 마드리드에 모인 한ㆍ중ㆍ일 3국과 아세안 회원국 재무장관들이 일명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최초 규모(800억 달러)와 대출조건 등에 합의하면서 ‘아시아만을 위한 공동펀드’ 탄생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10년전 외환위기 당시 미국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이 내준 구제금융의 대가로 가혹한 융자조건과 일방적인 구조조정안을 감내해야 했던 한국과 아시아 각국에게 AMF는 단순한 이익기구를 넘어 ‘금융주권 확보’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동시에 한ㆍ중ㆍ일 중심의 ‘아시아 경제ㆍ통화블럭’을 조금 더 가시화하는 뜻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장래는 여전히 안갯 속이다. 내우(內憂)도 있고 외환(外患)도 크다.
외부장애물은 미국의 반대다. 미국은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전염병처럼 번져가던 1997년 IMFㆍIBRD(세계은행) 연차 총회에서, 일본이 제안한 1,000억 달러 규모 AMF 설립안을 강력히 반대해 무산시킨 바 있다. IMF와의 기능 중복, 수혜국의 모럴 헤저드 등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AMF 설립시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아시아 각국은 2000년 재무장관회의에서 역내 국가간 쌍무적 통화 스와프(교환)을 통해 위기시 단기 외화유동성을 지원하는 초보적 수준의 ‘치앙마이 구상(CMI)’으로 첫 걸음을 뗄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꾸준한 설득으로 지난해 CMI를 다자간 협약으로 발전시켜 AMF 설립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역시 올해 회의에서도 ‘새 공동펀드는 IMF의 보완적 체제’라는 점을 합의문에 명시해야 했을 정도로 미국의 ‘견제’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반대 보다 더 큰 걱정거리는 내부에 있다. 특히 아시아 맹주자리를 놓고 일본과 중국의 신경전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사실 AMF의 관건은 어느 나라에 얼마를 빌려줄지를 결정하는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있다. 이번 회의에서 펀드 조성액의 80%를 내기로 한 한ㆍ중ㆍ일 3국이 세부 분담액수를 정하지 못한 것도, 분담규모에 따라 목소리가 틀려지기 때문이다.
특히 일ㆍ중간 자존심 싸움이 거세다. 일본은 중국보다 경제력이 앞선다는 점을,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위상과 구매력이 앞선다고 서로 버티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며 주도권을 극대화해야 할 입장이다. 때문에 AMF가 언제쯤 IMF같은 모양새와 기능을 갖출지는 누구도 단언키 어렵게 되어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3국이 6월부터 분담 비율과 의사결정 방식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AMF 탄생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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