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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창업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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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창업 후진국

입력
2008.05.06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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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가의 펀드매니저로 일하던 제프 베조스는 1995년 인터넷의 월드 와이드 웹 사용자가 매달 2,300%씩 급증한다는 기사를 읽은 후 사표를 냈다. 베조스는 이삿짐을 꾸려 도착할 장소도 정하지 않은 채 서부로 향하다가 서적 유통업체 잉그램이 있는 시애틀에 정착했다. 시애틀 교외의 주택을 임차한 그는 지하 차고에서 프로그래머 3명과 함께 밤샘하며 창업에 몰두했다. 7월 중순 인터넷을 통해 서적을 판매하는 온라인기업 아마존 닷컴이 탄생했다.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다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1998년 9월 초 대학 근처 멘로 파크의 한 주택 창고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쌓아놓고 일을 하다가 구글을 창업했다.

미국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인의 천국으로 불리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창업 천국을 만들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덴마크는 7시간이면 창업이 가능하게끔 만들었다. 전체 기업의 10% 가량이 1년 미만의 신생기업일 정도로 창업이 활성화돼 있다. 일본도 2006년에 1엔만 있으면 창업이 가능토록 최저자본금을 없앴다. 싱가포르, 아일랜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데 힘쓰고 있다.

▦한국은 창업후진국이라고 불릴 만큼 기업하기 까다로운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07년 기업환경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창업 환경순위는 최하위권인 116위였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창업 환경은 케냐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창업이 힘든 것은 까다로운 창업절차가 우선 지적되지만, 금융회사의 연대보증 및 담보대출 등 전당포식 대출 행태도 주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부도를 내면 본인만이 아니라 보증을 선 가족과 친인척까지 재산을 날리기 일쑤다. 부도기업인은 인신구속까지 해 회사를 수습할 기회마저 제대로 주지 않는다.

▦창업이 까다롭다 보니 한국기업의 생태계는 지나치게 고여 있다. 상위 10대그룹은 50년 이상 된 기업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강자가 출현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최저자본금 제도를 없애는 등 창업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창업 열기를 가로막는 금융회사들의 연대보증 및 담보대출에 대한 개선책이 없는 반쪽 대책이기 때문이다. 한국형 빌 게이츠, 래리 페이지가 나오려면 창업 규제 혁파와 함께 후진적 금융 관행도 개혁돼야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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