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딘 고디머 / 책세상
1994년 5월 2일 넬슨 만델라(90)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흑인이 참여한 가운데 치러진 자유 총선에서 승리했다. 만델라는 5월 10일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만델라의 승리는 세계 인권운동의 승리이자, 남아공에서 350여년간 계속됐던 백인의 흑인 통치, 좁게는 인종격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 동안 투옥됐던 만델라가 1990년 2월 11일 감옥 문을 나서면서 한 말이 있다. “나는 나딘을 만나야 합니다.”
나딘은 남아공의 백인 여성 작가 나딘 고디머(85)를 가리킨다. 아파르트헤이트로 특권을 누리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나딘 고디머는,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지배하던 남아공의 체제를 작품활동과 현실참여를 통해 집요하게 고발하고 비판해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뜨리는 데 공헌한 작가였다. 살아있는 신화였던 만델라의 출옥 일성은 나딘 고디머의 그같은 투쟁에 대한 감사이자, 황폐한 세계에서 그래도 아직 ‘펜의 힘’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웅변이기도 했다. 나딘 고디머는 이듬해인 1991년 여성으로서는 꼭 사반세기만에 노벨문학상을, 만델라는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만델라는 대통령 직에서 퇴임하기 직전인 1999년 5월 나딘 고디머에게 국민훈장을 수여, 다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나딘 고디머는 백인 식민주의의 착취와 억압의 땅이었던 남아공에서 기득권자인 백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면서, 스스로를 ‘아프리카 작가’로 규정하고 그 존재의 긴장상태를 연료 삼아 작품을 써 왔다. <거짓의 날들> 은 남아공 광산지역에서 태어난 백인 소녀 헬렌이 몸과 마음의 눈을 떠 가는 성장기를 통해 남아공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그린, 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20세기 최고의 여성 성장소설’로 꼽히기도 하는 나딘 고디머 초기의 첫 장편인데, 더없이 서정적인 문체로 폭력적인 현실을 일깨우는 그의 필치가 선연하다. 거짓의>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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