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대전 직후부터 에세이, 기행문 등 문필 활동을 통해 제국주의 일본을 비판하고 반전과 평화운동에 앞장선 일본 여성수필가 오카베 이쓰코(岡部伊都子)씨가 29일 오전4시께 일본 교토(京都)의 한 병원에서 간암에 따른 호흡기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한국인이 많이 살았던 오사카(大阪)의 타일 도매상 집에서 태어난 오카베씨는 어릴 때부터 한국인 차별을 보며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 병약해 여고를 중퇴할 때까지 군국주의 교육만 받아온 그가 반전평화주의자로 거듭 난 계기는 약혼자의 죽음이었다.
2005년 일본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1943년 세 살 연상의 일본군 간부후보생 기무라 구니오(木村邦夫)와 약혼한 뒤 그로부터 “이 전쟁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런 전쟁에서 죽고 싶지 않아. 천황 폐하를 위해서라며 죽는 건 싫어. 당신을 위해서라거나 나라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지만”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은 신의 나라이며 국민은 천황의 자식이며 남자라면 천황을 위해 전쟁에 나가 죽는 게 당연하다”고 배운 그는 “나 같으면 기꺼이 죽겠는데”라며 약혼자를 붙잡지 않았다. 중국 전장에 갔다 오키나와로 옮긴 약혼자는 미군 폭격으로 두 다리를 잃고 권총 자살했다.
50년대 초반 문필 활동을 시작한 그에게 약혼자의 죽음은 부채이자 글쓰기의 목적이었다. 자비 출판했던 책이 신문에 소개돼 수필가 겸 방송작가로서 본격적인 글쓰기에 나선 그는 50여년 동안 재일한국인 등 일본 내 소수자의 인권과 평화, 환경문제와 일본군위안부, 역사교과서 왜곡 등 과거사 문제를 다룬 글을 숱하게 발표했다. 70년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지하 시인 등 당시 한국 재야인사들의 석방시위에도 앞장섰다.
그는 또 일본 문화와 일상 속의 아름다움을 소박한 언어로 표현해 수많은 독자에게 수필의 감동을 선사했다. 일본의 미술, 문예 가운데 ‘근원이 되는 조선’을 찾아내려는 자신의 수필을 모아 발행한 ‘조선모상(朝鮮母像)’도 그런 작품집 중 하나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작품활동을 계속했는데 그렇게 펴낸 단행본이 120여권에 이른다.
오카베씨는 한 인터뷰에서 “일본인은 모두 자신이 전쟁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쟁에 나가는 사람에게 깃발을 흔들며 ‘다녀오세요’ 하고 배웅했다. 전쟁에 가담한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전쟁이 싫다. 젊은 사람이 전장에 나가 죽는 것이 싫다. 모든 사람이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 위로해 가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죽음을 눈 앞에 둔 내가 내린 결론이다”고 강조했다.
평생 반전운동에 힘쓴 그가 숨진 날은 공교롭게도 태평양전쟁 책임자 쇼와(昭和) 천황의 탄생을 기리는 ‘쇼와의 날’이었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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