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가 1905년 을사조약부터 1945년 해방 시점까지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하는 데 적극 협력했다며 29일 친일파 4,77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91년부터 일제 강점기 당시의 공문서, 신문, 잡지 등 문헌자료를 모아 친일 행적을 보인 인물을 가려냈다.
연구소가 이용한 자료는 조선총독부 관보, 직원록 등 기관에서 낸 자료 200여권을 비롯, 매일신보 만선일보 등 신문자료 40여종, 삼천리 조광 등 친일 잡지 80여종 등 2,000여종에 달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2001년 문을 열기까지 10년 동안 연구소는 100만여 건에 달하는 인물 정보를 구축했다.
편찬위원회는 연구소가 추린 인물정보를 넘겨 받아 관련 논문과 저술을 참고하면서 수록 대상을 선정했다. 경찰, 군, 학술, 언론, 경제, 종교, 미술, 음악, 문학 등 20여개 전문분과위원회가 의견서를 작성하고, 상임위원회 검토를 거친 후 자문위원회의 조언을 첨가해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렸다.
편찬위원회 관계자는 "면밀한 검토를 거쳐 불평등조약 체결에 앞장섰거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했던 반민족 행위자는 모두 명단에 수록했다"면서 "일제의 하수인이 된 사람이나 식민통치를 미화한 지식인, 문화예술인 등은 일정한 직위 이상이었던 사람만 명단에 올렸다"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편찬위원회 측은 엄정한 심사를 표방했지만 이날 명단이 공개되자 유족들과 후손, 관련 단체 등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가족들은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아들인 신철식 전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은 "아버지는 일본군에 지원하는 것이 싫어서 공무원도 그만두고 해방될 때까지 숨어 살았던 분"이라며 "조만간 이의신청을 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월북 무용가 최승희 측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승희 추모사업회'의 김홍배 회장은 "최 선생이 일본 군용비를 냈다는 이유로 명단에 올랐는데, 당시 홍천군 남면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며 "무용을 통해 조선을 알리고, 조선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 그를 친일행위자로 선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최승희 추모사업회는 친일인명사전에서 최승희를 빼달라는 홍천군 남면 주민 1,500여명의 서명을 받아 민족문제연구소에 최근 이의신청을 냈다.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1938년 일본 천황을 찬양하는 '에텐라쿠'를 작곡하고, 일본 관료들의 단체인 일독회를 후원한 행적 때문에 명단에 포함됐다는 소식에 안익태 기념재단 측은 이의신청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관계자는 "안익태 선생이 독일 신문에 일본인으로 기사화되고 여권도 일본인 국적으로 나와 있긴 하지만 당시 어느 국민이 나라를 선택할 수 있었겠냐"며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어도 친일파라고 하지 않으면서 왜 안익태 선생은 그렇게 봐주지 않느냐"고 민족문제연구소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허정헌 기자 박민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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