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차세대 전자제품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소비자 가전전시회(CES)가 열린다. 41회째인 올해 CES에선 한 편의 코믹 동영상이 관람객들의 눈을 먼저 사로 잡았다. ‘Bill Gates’ last day at Microsoft’라는 제목의 비디오였다.
2년 전 밝힌 대로 올 7월 MS 경영에서 손을 떼는 빌 게이츠가 자신의 경력을 내세우며, 카메오로 출연한 연예계 및 정계의 유명 인사들에게 새 일자리를 부탁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는 내용이다. 동영상이 끝난 후 그는 “CES에서의 연설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약속을 확인했다.
▦ 그의 부인 멜린다가 1월 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남편을 따라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것은 몇 차례 되지만, 자기 세션을 가진 것은 처음이었다. 앞서 빌이 질병과 가난, 교육부재로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창조적 자본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까닭에, 이어진 그녀의 말에 200여 명의 명망가들은 귀를 곤두세웠다. 남편의 관심사에 빈곤국의 여성문제를 더하는 것 외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여름부터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벌일 일에 큰 기대를 갖게 됐다.
▦ 멜린다의 주도로 2000년 설립된 재단의 현재 자산은 330억 달러. 빌과 멜린다의 결혼을 주선한 워런 버핏이 낸 돈 34억 달러도 포함돼 있다. 올해 세계 최고 갑부의 자리를 버핏에게 내주고 2위도 멕시코의 통신ㆍ유통재벌 카를로스 슬림에게 빼앗겼지만, 빌은 58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 중 1,000만 달러 정도만 세 자녀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실현할 재단에 출연키로 공약했다. “부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는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설립자의 뜻이 고귀하기에 ‘빌 없는 MS’를 준비해온 직원들의 열의는 더 뜨겁다.
▦ 그제 삼성전자 이사회가 이건희 대표이사 회장의 사퇴서를 수리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 날의 모든 허물을 떠안고 가겠다”고 밝힌 지 1주일 만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건희 전 회장’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났으나, 빌 게이츠의 은퇴와 맞물리는 시점이 묘하다. 이 전 회장 역시 세금을 내고 남는 수조원의 재산을 뜻 깊은 곳에 쓰겠다고 했다. 그를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에 회한과 기대가 교차하는 이유다. ‘빌 게이츠 모델’을 뛰어넘는, 한국 최고 재벌 명문가가 빚는 ‘이건희 모델’이 과연 나올까
이유식 논설위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