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극장이 아니래도 좋았다. 검도복 바지를 걸친 11인의 배우들이 마루 위를 후끈 달리면서 단련된 몸으로 육박해오고 있었다. 대관료로 인한 제작비 상승과 그에 비해 궁색함을 벗지 못하는 소극장환경에 대적하려는가.
극단 '극공작소 마방진' 연습실이 내부에 무대와 객석을 놓아 공연을 위한 대안적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최소한의 조명만으로, 그럴듯한 세트 하나 없이 올리는 연극인지라 오직 이야기의 힘과 연기력으로 진검 승부해야 한다. <강철왕> 은 그 첫 시도인 셈이다. 강철왕>
무대는 '젠(zen) 스타일'의 격자 칸막이 설치물을 통해 배경막을 세우고 등퇴장구를 구획한 뒤, 비닐 포장재로 마감했다. 부드럽고 연한 것들을 경화시키고자 덤비는 세계로부터 예술가가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연상하기에 적절하다. (심채선 무대미술)
무용수가 되려 했던 주인공 왕기(조운)는 열처리 공장을 하는 아버지(조영규)의 현실원칙에 눌려 가업을 이어받는다. 아버지의 야망의 꼭두각시로 몰락하는 중에도 왕기는 자신의 꿈을 지켜가려 애쓰지만, 선하고 여린 것을 파괴하는 외부의 힘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남성적인 것'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유희로 가득한 이 연극은 부드러운 것이 궁극 강한 것을 이기는 노자 철학의 핵심을 만화적 역설로 비튼다. 노동자 파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계 오작동 사고로 강철 인간이 된 주인공은 결국 자본주의라는 대부의 발밑에서 왜곡된 부성에 뒤몰려 (가장 부드럽다는) '물'을 마시고, 녹슬어 '고철' 덩어리가 되고 만다.
기업이 어떻게 욕망을 키우고, 더 큰 이윤을 내기 위한 과정에서 노동현실은 어떻게 비인간적이 되어 가는지, 자본가의 윤리가 상도를 내던지고 변질되어 가는 과정 등 현실적 묘파가 생생하다. 생산자본 못지않게 유통 자본에 기여하는 방송, 언론, 광고, 의료계 등 자본주의 시스템의 전체적 야합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연극의 유희정신으로 가득 찬 몸과 말, 리듬의 극한적 속도전을 실험하는 이 연극은 오늘날 관객의 구미를 자극하기에 맞춤하다. 특히 작가 고선웅의 장기가 만발하여 영어, 일어, 그리고 남성적인 것과 가부장제의 폭력성으로 오염된 모국어의 현실태를 풍성하게 과장해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나치다 싶을 입심과 연출력 과잉 때문에 관객의 숨쉬기까지 가팔라진다. '비움'과 '절제'의 형식미학이 아쉽다. 어쨌든 '극공작소 마방진'의 이번 시도는 우리 연극의 제작환경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완성도를 갖춘 시사 풍자적 우화극을 성취한데 그 의미가 있다. 고선웅 작 연출. 5월 5일까지 마방진극공작소.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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