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47)가 25일 오전 입국했다. YTN에서 주최하는 제1회 월드사이언스포럼(28~30일)에 특별 강연자로 초청받아 6년 만에 한국을 찾은 것. 오전7시 인천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오전10시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을 찾은 베르베르씨는 피곤한 기색 없이 30여 명의 기자들을 맞았다.
사진 촬영을 할 땐 자신의 노키아 휴대폰 카메라로 기자들을 찍는 등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방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한국은 작가로서 나를 발견해준 첫 번째 나라”라면서 “내게 친구 같은 나라여서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늘 관심을 갖고 있다”며 애정을 비쳤다.
-소설가인데 과학포럼 연사로 초청됐다. 강연 내용이 뭔가.
“이번 포럼 주제가 ‘뇌’다. 인간 행동 동기, 지성의 발전 방향, 욕구의 본질 등 중요한 문제의 해답이 뇌라는 마지막 미지의 대륙에 묻혀있다. 뇌를 이해함으로써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내가 장편 <뇌> 를 쓴 이유고 이번 강연 내용의 주종을 이룬다. 인간 뇌의 위대성은 ‘지능’뿐 아니라 ‘의식’을 갖췄다는 점이다. 단순한 기억 용량, 정보처리 능력과 관계된 ‘지능’은 오히려 컴퓨터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아를 의식하고 정체성을 찾는 ‘의식’은 인간 고유의 것이다.” 뇌>
-한국에 이어 러시아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들었다. 이유를 뭐라고 보나.
“한국 독자들은 (프랑스에 비해) 교육 수준이 높고 책을 많이 읽는 것 같다. 그리고 미래를 보려는 의식이 강하다. 너무 편해서 거의 졸고 있는 프랑스에 비해, 한국 주변엔 정치ㆍ군사ㆍ경제적으로 여러 위협 요소가 있다. 그러다보니 과학기술, 미래의 변화 같은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한다. 밖에서 보면 매우 역동적인 나라다. 러시아에서 이름이 알려진 건 작년부터다. 교통사고를 당한 한 독자가 내 작품 <천사들의 제국> 을 읽고 감동을 받아 인터넷에 번역 내용을 올려 화제가 됐다. 그걸 계기로 몇 권의 작품이 번역됐다. <천사들의 제국> 은 철저히 영성(靈性)을 다룬 작품이다. 사회주의 붕괴의 빈자리를 현대적 영성으로 메우려는 움직임이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이유인 듯하다.” 천사들의> 천사들의>
-구상ㆍ집필에 9년이 걸렸다는 <신> 3부작이 작년 프랑스에서 완간됐다. 반응이 어떤가. 신>
“2005년부터 매해 한 권씩, <우리는 신> <신들의 숨결> <신들의 미스터리> 를 냈다. 한국에는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 소개될 예정이다. 이중 <우리의 신> 은 프랑스에서 <개미> 보다 3배 더 많이 팔렸다. 학살과 배신으로 점철된 지구 인류사의 전모를 아는 존재가 누굴까 생각하다가 신(神)을 생각했다. 3부작은 천사가 된 인간 ‘미카엘 팽송’을 주인공으로 한다. 주연은 하나지만 주조연 30명, 조연 300명, 엑스트라 1,000여 명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이다. 지구를 넘어서는 완벽한 세계를 만들어야 해서 무척 힘들었다. 9년이나 걸리는 작품은 이제 안 쓸 거다(웃음). 해마다 10월에 책을 내는데 이번엔 올망졸망한 소재의 단편 20편을 묶은 작품집을 낼 계획이다.” 개미> 우리의> 신들의> 신들의> 우리는>
그가 신작을 10월에 내는 이유가 궁금했다. 공쿠르상, 르노도상, 페미나상 등 프랑스 유수 문학상 거개가 9월~10월 중순 후보작을 추려 10월말~11월 수상작을 발표하기 때문에, 프랑스 작가들은 심사 개시 직전인 초가을에 신작을 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베르베르씨는 작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2007년 7월31일자)에서 “졸필 작가 20명 가량이 문학상 심사권을 몽땅 쥐고 좋은 책의 출현을 막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 적 있다. 신작 발표 시기가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것인지 물었다.
“맞다. 일부러 신작이 쏟아지고 심사가 마무리된 이후에 책을 낸다. 문학상 수상작들을 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자전적인 작품이 많고, 문장이 길고 복잡하며, 이야기가 없다. 그런 것들과 매우 다른 작품을 제시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기도 그렇게 잡았다. 다른 이유는 그즈음이 내 생일이어서 생일날을 잊지 않기 위해 책을 낸다(웃음). 또다른 이유는 출판사 측 생각인데 그쯤 내야 크리스마스 선물 수요를 노릴 수 있다고 한다(웃음).”
-비평가보단 독자의 반응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를 늘상 했다.
“인터뷰는 줄이고, 대신 도서전 등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난다. 하루 1,000명 가량이 들르는 개인 홈페이지(www.bernardwerber.com)를 운영하면서 독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에 관한 정보도 자세히 알리고 있다. 전세계인과 접촉할 수 있으면서도 소통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 인터넷은 여러 모로 유용하다.”
-당신은 늘 외부에서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취한다. 경험에 바탕한 소설을 안쓴다는 원칙이 있나.
“안 그래도 올해 내는 단편집엔 다섯 작품 정도가 자전적인 내용이다. 그 중 하나는 아프리카에서 개미를 취재할 때 머물렀던 외딴 부족 마을 이야기다. 그곳은 마녀가 지배하는 희한한 사회였다. 프랑스 지방 신문기자로 일할 때의 경험도 있다. 내가 한 작은 마을의 암살자를 찾아낸 일이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되레 ‘당신이 떠들고 다니면 생활이 복잡하고 힘들어지니까 말하지 말라’는 거다. 여파가 크면 아예 회피하려는 심리는 인간 보편적인 것이다. 잊지 않으려 메모해둔 특별한 체험들이 소설거리가 됐다.”
-왜 소설가가 됐나.
“삶에 대한 불안증이 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쓰면서 이런 불안감을 넘어서는 경험을 했다. 글을 쓰면 기분이 좋았고, 글을 읽어주면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작가가 안됐더라도 계속 글을 써왔을 것 같다. 내게 글쓰기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들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매일 신문을 읽는데 늘 문제적인 현실이 그득하다.
그 중 하나가 공해 문제였고, 도저히 공해를 극복할 수 없을 땐 새로운 행성을 만들어 떠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파피용> 을 썼다.” 파피용>
질의 응답은 1시간30분 넘게 이어졌다. 간담회가 끝나려는데 베르베르씨가 자신이 감독을 맡아 작년 4월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우리 친구, 지구인> 얘기를 꺼냈다. 인간이 야생 동물을 관찰하고 거기에 자기 본위적 해설을 달아 동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과 비슷한 콘셉트를 지닌 ‘외계인의 지구인 관찰기’라고 한다. 우리>
그는 “제대로 배급이 안돼서 컬트 영화처럼 돼버렸다”며 아쉬움을 거듭 토로했다. 이 영화는 그의 방한 기간(5월1일 출국) 중인 28일 오후7시 대학로 하이퍼텍나다에서 상연된다.
베르베르 씨는 26일 오후3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팬사인회를, 27일 오후1시엔 서울 광화문 KT아트홀에서 ‘문학 콘서트’를 갖는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사진=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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