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38)씨가 등단 14년 만에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펴냈다. 슬픔이>
수록시 ‘나를 환멸로 이끄는 것들’에서 시인은 ‘태양/ 오른쪽/ 레몬 향기/ 상념 없는 산책/ 죽은 개 옆에 산 개/ 노루귀 꽃이 빠진 식물도감/ …’ 등 한 행에 하나씩 환멸의 대상을 제시한다. 행 글자수가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며 조형적으로 산 모양을 이룬다. 삶은 산처럼 우뚝하고 거대한 환멸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시인의 감각인 듯싶다.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어찌할 수 없는 소문’).
환멸의 연유는 얼마간 사회적이다. 여우비 내리던 날 시인은 ‘깃발, 조국, 사창가, 유년의 골목길/ 내가 믿었던 혁명은 결코 오지 않으리/ 차라리 모호한 휴일의 일기예보를 믿겠네’라고 빈정대며 선언한다. ‘여우야, 나는 이제 이제 지식을 버리고/ 뚜렷한 흥분과 우울을 취하련다’(‘착각’). 이제 ‘혁명’ 대신 ‘흥분과 우울’ 같은 모호하고 푸석대는 것들을 디디며 ‘곡예사’처럼 살겠다고 거듭 뻗댄다. ‘구름과 안개에 골몰하느라 학업과 노동을 작파한 지 오래/ …/ 나는 그저 고독한 아크로바트일 뿐/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 이름이 무엇이고 거처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구름과 안개의 곡예사’).
어머니에게 ‘이제 영어로 말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장롱벽에 기댄 채 운명한, <사상계> 를 즐겨 읽던 아버지의 죽음은 장남인 시인에게 또다른 삶의 무게다. ‘소싯적에 거 참 잘생기셨던/ 아버지, 망부 청송심씨후인/ 위패를 쓰다 난 으이씨, 하고 울었다/ 아버지, 어찌/ 죽음 갖고 아트를 하십니까’(‘아버지 옛집을 생각하며’). 미국 유학 시절(1998~2006년)의 가난과 불안을 함께 견뎌준 아내와의 이혼이 준 상심도 크다. ‘떠나고 없는 그대여, 나는 다시 오랜 습관을 반복하듯 그대의 부재로 한층 깊어진 눈앞의 어둠을 응시한다, 순서대로라면, 흐느껴 울 차례이리라’(‘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사상계>
그럼에도 시인은 결국, 참고 견디려 한다. 그래야만 하기에. ‘내게 인간과 언어 이외의 의미 있는 처소를 알려다오/ 거기 머물며 남아 있는 모든 계절이란 계절을 보낼 테다/ 그러나 애절하고 애통하고 애틋하여라, 지금으로서는/ 내게 주어진 것들만이 전부이구나’(‘웃는다, 웃어야 하기에’). 남편의 유지를 따라 초급영어를 공부하는 어머니의 질문 공세에 냉소하지 않고 유쾌하게 답한다. ‘나는 해석자이다/ 크게 웃는 장남이다/ 비극적인 일이 다시 일어난다 해도/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해도/ 나는 정확히 해석하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큰 소리로 웃어야 한다’(앞의 시). ‘이렇게 매일 구겨지다보면/ 언젠가는 죽음의 밑을 잘 닦을 수 있게 되겠지’(‘한때 황금 전봇대의 생을 질투하였다’).
이런 태도는 ‘씨익,/ 웃을 운명’(‘편지’)을 타고난 시인의 생래적 낙천성 때문이고, 그보다 더 ‘여기서부터 진실까지는 아득히 멀다/ 그것이 발정기처럼 뚜렷해질 때까지 나는 가야한다’는 생에 대한 단단한 대결의식 때문이다. 슬퍼하되 퇴폐하지 않고, 솔직하되 천박하지 않으며, 진지하되 정색하지 않으려는 균형 감각이, 시종 유머를 잃지 않는 윤기 있는 시어 속에 오롯하다.
오늘날 종교의 위상과 현실을 풍자적 언어로 묘파한 ‘종교에 관하여’ 같은 시에선 사회학자(콜롬비아대 박사)인 시인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먼지 혹은 폐허’는 다채로운 형식 변주를 통해 시인이 지닌 생의 감각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장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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