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시族 넘쳐나도 기능인은 부족… 산업에 피가 안돌아
#1 해외건설 전문인력모집 공고를 낸 A건설사. 넉달이 지나도록 목표인력의 절반도 구하지 못했다. A사 관계자는 “해외 수주는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 일할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며 “외부에서 영입을 해 오려고 해도 마땅한 적임자가 없다”고 답답해 했다.
#2 조선업체 B사도 배를 설계할 전문가가 모자란다. 해외 수주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사람이 없어 작업이 지연될 정도다. 최근에는 인도와 중국에서 초급 수준의 설계인력까지 데려오고 있지만, 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데다 낮은 숙련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업준비생 60만7,000명, 실업자 81만9,000명, 일을 할 수 있지만 특별한 이유없이 쉬는 사람들 162만8,000명. 300만명에 이르는 국내 ‘백수’들의 통계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자. 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인재들이 고시로만 몰리고, 이공계 고급인력은 외국으로 급속히 빠져나간다. 학력인플레 속에서 산업현장은 젊은 인력을 제대로 수혈 받지 못해 하루하루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높아가는 인력부족률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들이 적임자를 찾지 못해 채우지 못한 인력은 25만명 가량. 2000년의 7만2,000명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인력부족률은 1.26%(2000년)에서 지난해 3.23%로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전문가나 기능직 인원이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조선업체 B사 관계자는 “설계 전문가가 부족해서 배 납기일이 늦어질 수도 있어, 향후 수주전에서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인력난은 위험수준에 도달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종업원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부족인원이 전체 부족인원의 93.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도의 기술이 필요 없는 사무직 등의 인원부족은 덜하지만, 기업운용을 위해 꼭 필요한 기능직 등의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지식기반 중소서비스업체의 경우, 기능직 인력부족률은 16.94%에 이른다. 회사 규모가 작아질수록 고통은 더 커진다. 종업원 5~19인 업체의 기능직 인력부족률은 28.92%에 이르렀다.
청년실업난 속에서 이처럼 심각한 인력부족 현상이 함께 발생하고 있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선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급증 등 기업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해졌다.
‘고시낭인’이 되어서라도,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업 선호현상이 심각해진 이유다. 중ㆍ고등학생들의 꿈조차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또 학력 차별 풍토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은 외국에 비해 학력별 임금격차가 큰 나라에 속하고, 학력이 사회적 성공여부를 지나치게 많이 좌우한다. 이로 인해 과거 능력 있는 산업인력 배출의 산실이었던 실업계 고교는 거의 종적을 감췄다. 반면 학력 인플레는 사회가 소화하지 못할 정도다.
돌아오지 않는 고급인력
산업현장 인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소위 국가 성장의 두뇌 역할을 해야 할 고급인력의 유출 또한 심각하다. 나가기만 하면 돌아오지를 않는다.
2006년 기준으로 해외 유학생수는 21만8,000명. 2003년(15만9,000명)과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유학생수는 늘어가지만,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이수영 박사 연구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5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이공계 인력의 73.9%가 미국에 남겠다고 답했다. 1996년 같은 조사에서 미국에 남겠다고 답한 이공계 인력은 50.2%에 불과했다. 이공계 출신들의 지위나 보수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홀대가 주요 이유로 꼽히고 있다.
고학력 저비용의 시간강사 환경 등 일부 기형적인 고학력 인력시장도 한몫하고 있다. 영국에서 유학중인 제갈 모씨는 “가끔 한국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과 진로에 대해 논의하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한국에 돌아오지 말고 해외에서 자리를 잡으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급인력의 유출은 국가 경쟁력 하락과 직결되고 있다. 특히 한국에 손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사실, 한국인이 해외 유수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들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그 뛰어난 인력들이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하지 않고, 해당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데이터센터 소장은 “워낙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에 정부에서 일자리의 질보다는 양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일자리 환경이 급속히 악화됐고, 직업환경이나 일자리의 질을 향상시키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일자리나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나 ‘적임자’가 없기 때문에, 실업자는 많으면서 기업들은 인력난을 겪는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소장은 “고학력화가 불가피한 것이라면, 대학교육이나 직업교육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손재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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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10년새 두뇌유출 급속 확대
한국은 인력유출 면에서 다른 경쟁국들과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을까. 다른 경쟁국들도 빠져나가는 고급인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두뇌유출이 급속히 확대된 것에 비해, 인도 중국 등 경쟁국들의 인력은 오히려 돌아오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유출(Brain Drain) 지수는 1995년 7.53에서 2006년 4.91로 뚝 떨어졌다. 지수가 10을 가리키면 인재의 완전 유입, 0점은 완전 유출을 뜻한다. 과거 인재를 빨아들이는 추세였던 한국이 인재를 대폭 내보내는 추세로 역전된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국들의 사정을 보자. 지난해 한국을 제치고 경제규모(GDP기준) 세계 12위로 올라선 인도의 분발이 가장 눈에 띈다.
인도는 95년 두뇌유출 지수 3을 기록했던 국가지만, 2006년은 6.76으로 대폭 뛰어올랐다. 세계적으로 이공계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인도의 고급 인력들이 고국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사이 한국과의 전세가 완전히 뒤집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돌아오는 인력보다 유출되는 인력이 많기는 하지만, 순유출 수준은 10년 사이 상당히 낮춰졌다. 이공계 출신의 정치 지도자가 많고, 과학자를 우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에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인력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급속한 경제성장에 성공한 아일랜드도 10년 사이 급반전했다. 95년 두뇌유출지수가 2.62에 불과해 심각한 인재유출을 겪었으나, 2006년 8.14로 뛰어올랐다. 두뇌유출 지수만 보더라도 그 나라 경제발전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있는 강대국들을 보면 각국의 인재를 빨아들여, 자국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지수는 2006년 7.84에 이른다.
95년에 8.51에 이르는 독보적인 인재유입을 자랑했다가 그나마 조금 떨어진 것이다. 북유럽의 강국 노르웨이는 원래 높았던 인재유입 수준이 더 높아지고 있다.
95년 7.67에서 2006년에는 7.83까지 올라서 미국을 바짝 따라붙었다. 일본과 독일도 유입정도가 조금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인재 유입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통합된 홍콩의 경우도, 인도나 아일랜드 못지 않은 인재 흡수창구로 발돋움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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