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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이건희, 이재용, 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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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이건희, 이재용, 빌 게이츠

입력
2008.04.25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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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이 4조 5,000억원에 이르는 삼성일가의 차명계좌를 밝혀냄에 따라 삼성 그룹이 강도 높은 경영 쇄신책을 내놓았다. 이건희 회장 퇴임, 전략기획실 해체,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백의종군, 홍라희 리움 미술관장 사임 등 예상을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성 사태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의 감정은 어떤 것일까. 여러 번 이 같은 시련을 겪어 온 삼성이 왜 불법적인 관행의 고리를 자르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 첨단 기술로 세계 시장을 누비는 일류 기업이 이런 후진적 기법에 의존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등 매우 복잡한 감정이 오갈 것이다.

■ 아무리 돈 많이 내도 감동 못 얻어

그러나 그런 복잡한 감정의 바닥에는 “한국에 삼성이 있다”는 자부심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삼성에게는 최대의 재산이다. 재계에서는 국민이 기업을 적대시한다고 불평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겪어온 국민들은 한국 경제를 일으켜 온 기업, 세계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에게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 일부 기업인들의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행태에 대한 적대감을 기업에 대한 적대감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1970년대, 80년대에 외국 여행을 하다가 대도시의 중심가에 붙어 있는 삼성, 골드스타(금성, LG의 옛 이름)의 광고판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던가. 세계 곳곳에서 거리를 달리는 현대자동차를 보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삼성은 1938년 창립 이래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1966년 밀수와 관련된 한비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 21년간 삼성을 맡아 매출 10배, 수익 75배, 시가총액 140배라는 큰 성장을 이룩했던 이건희 회장도 결국 비리로 물러나게 되었다.

한비사건으로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신군부의 재벌개혁으로 동양방송을 헌납하고, 3년 전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8,000억 원을 사회 환원하는 등 위기를 ‘헌납’으로 돌파해 온 삼성은 준법과 정도(正道) 경영을 뿌리내리지 못한 채 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

이번 쇄신안에는 특검에서 밝힌 4조5,000억 원의 차명재산 중 차명주식을 제외한 약 2조원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세금을 내고 나면 약 1조원이 남는데, 2005년의 8,000억원 사회환원이 여론을 바꾸는 데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시간을 두고 ‘유익한 일’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건희 회장이 빌 게이츠처럼 자선사업가로 뜻 깊은 제2의 생을 시작하면 어떨까. 대기업들이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벌금 내듯 큰 돈을 사회에 내놓는 것에 국민은 별로 감동이 없다. 국민이 감동하지 않으면 면죄부 효력도 없다.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로 미국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는 아내와 자신의 이름을 딴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을 설립, 인도주의 사업에 몰두하기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으로써 세계를 감동시켰다. 그는 소프트웨어로 혁명을 일으킨 사업가에서 새로운 가치와 사상을 전파하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특권이 없는 이들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하고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나는 이건희 회장이 ‘특권이 없는 이’들의 삶에 대해 잘 알게 되고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일에 나선다면 멋진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조원을 사회에 내놓는 대신 재단을 만들어서 직접 자선사업에 나섰으면 좋겠다. ‘황제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 부자만 할 수 있는 보람있는 일을

만일 이건희 회장이 할 수 없다면 이재용씨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철 회장이나 이건희 회장은 각기 그 시대의 한계가 있었지만, 이재용 시대는 다르다. 그는 빌 게이츠를 꿈꿀 수 있고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부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자들의 축복이다. 삼성의 시련 속에서 어떤 꿈이 싹트고 자란다면 그것은 삼성일가의 큰 축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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