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승부냐, 체면 치레냐." 올 가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제 1회 월드 마인드 스포츠 게임에 출전할 한국 바둑 선수단 구성 문제를 놓고 한국기원이 '장고'에 들어 갔다.
월드 마인드 스포츠 게임은 3년 전에 설립된 국제마인드스포츠협회(IMSA)가 주최하는 대회다.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직후 올림픽 경기장에서 세계 150여 개국에서 3,000여명의 선수들이 출전, 바둑 체스 브릿지 체커 중국장기 등 5개 종목에서 35개의 메달을 놓고 열전을 벌인다.
이 중 바둑 부문은 남자 단체전(국가별 엔트리 6명) 여자 단체전(4명) 남자 개인전(5명) 여자 개인전(3명) 혼성 페어(2명 3개팀) 오픈 개인전(2명) 등 6개의 메달이 걸려 있는데 한ㆍ중ㆍ일을 비롯, 70여개국에서 6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스포츠' 기반 닦는 대규모 행사
전세계인들의 관심이 아직 올림픽에 쏠려 있는 틈을 이용해서 '마인드 스포츠'도 '스포츠'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서 장차 올림픽 종목에 들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국기원은 당초 이 대회에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과거 유럽 지역에서 가끔 열렸던 '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드'와 유사한 아마추어 대회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의 경우 프로 선수도 출전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일단 순수 아마추어를 중심으로 선수단을 구성하고 프로 기사 몇 명을 구색으로 넣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것은 그래서다.
선수 선발도 한국기원 홈페이지에 출전 선수 모집 공고 하나 덜렁 띄워 놓고 참가 신청을 받았다. 그러니 당연히 대부분의 프로 기사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더러, 그런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는 기사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대회 일자가 다가오면서 바둑계에서 이 대회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최근 이 대회의 바둑 룰 회의에 참석했던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프로기사) 등이 한국기원측에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들은 "현지에 가보니 개최국인 중국은 물론 전세계 회원국들이 이 대회에 거는 기대와 열기가 대단하다"며 집행부에 "바둑이 세계인들에게 체스 브릿지 등과 함께 마인드 스포츠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첫 대규모 행사인 이번 대회에 세계 최강인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력 요청했다.
게다가 중국이 구리를 포함해 최강자급 프로 기사를 대거 출전시켜 바둑에 걸려 있는 메달 6개를 싹쓸이하려 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국내 바둑계에서는 "한국도 프로 선수의 수를 늘리고 전력도 좀더 강화해서 중국과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과연 어느 정도 수준으로 선수단을 구성해야 하느냐가 고민거리로 등장한 것은 그래서다.
■ 현실적으로 최정상급 파견 어려워
그러나 아무래도 '정면 승부'보다는 '체면 치레'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현실적으로 이창호 이세돌을 비롯한 최정상급 기사를 파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 대회는 기본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상금이나 대국료가 전혀 없다. 오히려 선수단이 참가비를 내야 한다.
따라서 돈이 안 되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프로의 속성상 '대회 입상시 포상금 지급' 같은 특별한 유인책이 없다면 사실상 정상급 프로들의 출전은 어려워 보인다.
빡빡한 대국 일정도 문제다. 이 대회는 10월 3일에 개막해서 18일 폐막식까지 무려 16일 동안 계속된다. 그러나 이 기간 중 국내에서는 우선 매주 4일간에 걸쳐 벌어지는 한국바둑리그를 비롯해 여류 기성전과 제 10기 농심배 경기가 예정돼 있다.
정상급 기사들은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더욱이 최종 엔트리 제출 마감일인 6월 20일까지 출전 선수 명단을 확정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국기원에서는 톱 랭커의 출전은 아예 포기, 최근 입단한 신예들과 한국기원 연구생들을 중심으로 선수단을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면 중국과 맞붙어도 어느 정도 대등한 경기를 벌일 수 있고, 최소한 준우승 정도는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며칠전 젊은 기사들의 모임인 소소회원들을 대상으로 대회 설명회를 가졌고 랭킹 50위 이내 선수들에게 다시 안내문을 발송해 '자발적인' 참가를 적극 독려할 계획이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상위 랭커 가운데 박정상과 송태곤의 출전이 거의 확정적이라는 점이다. 현재 병역 특례 혜택으로 대체 복무 중인 이들로서는 국가적인 바둑 행사에 반드시 출전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 '중국 룰'적용 논란
새로운 세계 대회가 열릴 때마다 항상 논란이 되는 바둑 룰 문제도 還??쏠리는 대목이다. 이 대회의 경우 중국 룰을 기본으로 하되, 계가 방식은 응씨 룰을 따르기로 합의했다. 대회 개최국이 중국이므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중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셈이다.
그렇다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역시 중국 룰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다 보면 중국룰이 앞으로 각종 대회에서 기본 룰로 굳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 중국이 이번 대회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앞으로 바둑을 포함한 마인드 스포츠 분야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세부적 규정에서도 중국 측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됐다. 예를 들어 대국 중 패감을 안 쓰고 패를 되따내는 행위나 착수를 한 후 돌을 다시 이동하는 것, 사석을 들어 내지 않거나 살아 있는 돌을 들어 내는 행위 등에 대해 한국이나 일본룰에서는 즉각 반칙패가 선언된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1회 경고(벌점으로 2집 공제)및 원상 회복, 2회 경고시 패배로 결정됐다. 바로 현재 중국 리그에서 적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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