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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소설집 낸 김중혁·손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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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소설집 낸 김중혁·손홍규

입력
2008.04.25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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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등단해 개성적인 작품 세계로 호평받고 있는 소설가 김중혁(37), 손홍규(33)씨가 나란히 두 번째 소설집을 냈다.

■ '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씨의 <악기들의 도서관> (문학동네 발행)엔 올해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엇박자D'를 비롯한 8편의 단편이 실렸다. "습관적ㆍ기계적으로 존재하는 작은 사물들에 훈김을 불어넣어"(소설가 이기호) 관습을 유쾌하게 깨뜨리는 작품들로 주목 받은 첫 소설집 <펭귄뉴스> (2006) 이후 꼭 2년 만이다.

전부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이번 수록작엔 피아니스트('자동피아노'), 기타리스트('나와 B'), 디제이('비닐광 시대'), 악기 가게 점원('악기들의 도서관') 등 음악과 관계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김씨는 "시기상 가장 앞선 수록작 '자동피아노'를 발표하고 나서 음악 자체와 음악을 소설적으로 다루는 방식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다"고 말했다.

'비닐광 시대'의 디제이는 어마한 음반을 수집한 한 남자의 레코드 창고에 감금된다. "음악을 알면 뭐 해? 음악을 느끼지는 않고, 그걸 잘라서 써먹을 생각만 하는데…"라고 악담을 퍼붓는 남자의 정체는 불법 음반을 제작ㆍ유통시키는 범법자다.

'악기들의 도서관'의 '나'는 자신이 맡아보는 악기점을 온갖 악기 소리의 샘플을 제공하는 도서관으로 만들고, '엇박자D'로 불리는 박자 감각 없는 친구는 음치들의 목소리를 조합해 감동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스스로를 '레고 블록'이요, '문장과 생각과 철학을 리믹스하는 디제이'로 칭하는 김씨의 문학관에 비춰볼 때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김씨는 자기 작품을 '메타 소설'로 읽는 시각에 대해 "흥미로운 독법이지만 그런 걸 의도하고 쓴 건 전혀 아니다"라고 손사래 친다.

'매뉴얼 제너레이션'의 주인공은 매뉴얼(기기 사용설명서) 작가이자 양질의 매뉴얼을 모은 잡지를 만드는 편집장. 잡동사니에 기발한 상상력을 보태 잘빠진 소설을 빚어내는 김씨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세상의 모든 매뉴얼은 "머리 속에다 거대한 밑그림을 그려주"는가 여부에 따라 좋은 매뉴얼과 나쁜 매뉴얼로 나뉘며, 매뉴얼의 문장들은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이라는 게 '나'의 신념이다.

김씨는 "머릿속에 새로운 공간과 동선을 완벽하게 그린 후에 비로소 쓰기 시작한다"며 "이 삼차원 공간을 이차원 텍스트로 정확히 묘사하는 걸 중시한다는 점에서 내 소설 쓰기는 좋은 매뉴얼 쓰기인 셈"이라 말했다.

정교하게 배치된 가상 공간, 간결하고 투명한 문장의 묘미가 여전한 김씨의 이번 작품집엔 첫 책에 없던 사람 냄새가 풍긴다. '사람-사물'의 관계를 천착하던 작가의 관심이 '사람-사람'의 관계에도 옮아간 까닭이다.

'엇박자D' '유리방패' '무방향 버스' '나와 B' 등의 작품엔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들에 대한 작가의 온기어린 시선이 묻어난다. 일러스트 솜씨로도 정평을 얻고 있는 김씨가 직접 꾸민 '작가의 말' 코너가 독특하다.

■ '봉섭이 가라사대'

손홍규씨는 첫 소설집 <사람의 신화> (2005) 출간 이후 발표한 단편 10편을 <봉섭이 가라사대> (창비 발행)에 묶었다. 그가 장편 <귀신의 시대> 를 발표한 시점(2006년)을 기준으로 이 소설집은 뚜렷한 결절을 맺는다.

2005-2006년 작품엔 반인반수적 존재들이 포진한다. '뱀이 눈을 뜬다'의 주인공은 다리에 뱀-뱀 머리가 그의 성기다-을 품고 살고, 표제작 속 소싸움꾼 '응삼'은 평생 소와 더불다가 얼굴마저 소를 닮게 된 인물이다.

비인간ㆍ비현실의 설정을 통해 손씨는 근대사회의 억압성을 들추거나, 거기에 균열을 낸다. '뱀-인간'의 다리에 뱀이 들어앉은 것은 아버지에 이어 도시 노동자가 된 그가 첫 해고를 당한 날 새끼발가락을 철문에 찧게 됐을 때다.

한 도시에 회자하는 '걸레 신화'는 동네 남학생들에게 윤간 당하고도 '요부' '걸레'라는 낙인을 얻은 '아영'이 일으킨 엉터리 기사이적의 결과다('상식적인 시절'). 이로써 가부장제ㆍ종교의 두 다리로 버티고 선 근대사회는 저를 농락한 여성을 전설처럼 기리는 맹한 체제임이 폭로된다.

2007년 이후 쓰여진 수록작 6편엔 이런 환상적 요소가 걷혔다. 물론 분신을 모티프 삼은 작품('도플갱어')이 있지만, 그조차도 인물과 배경에서 현실적 질감이 느껴진다. 손씨는 "우회하지 말고 좀더 직접적으로 현실과 대면하자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고 말했다.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공유하는 세 편의 연작은 복수를 테마로 한, 개인적 정체성에 관한 소사(小史)로 읽힌다.

80년 광주에서 죽은 아들에 대한 복수를 평생 도모하는 '박', 이혼한 부인에게 총을 쏘다 총기사고로 되레 제 팔만 잃은 박의 또다른 아들 '정수', 불알친구들과 '강?을 계획하다가 흐지부지하는 '승준'-정수의 아들 여자친구의 동생-을 각각 중심인물 삼은 세 단편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하찮고 사소해지는 생의 감각을 묘파한다.

습작 시절의 열정과 고뇌를 엿보게 하는 자전적 소설 '매혹적인 결말'의 결구, "그래, 악마는 되지 말아야지. 매혹적인 결말을 찾다보면, 모든 결말은 매혹적이라는 걸 잊을 수도 있으니까."(70쪽)란 문장도 한결 담백해진 작풍 변화와 맞닿아있다.

하지만 독자를 힘껏 끌어당기는, 자유자재의 유머까지 가미된 서사의 힘만큼은 여전히 우뚝하다. 손씨가 취재에 들이는 공도 오롯이 느껴진다.

남북한 문체를 번갈아 구사하는 '도플갱어'를 쓸 땐 서울 광화문 북한자료센터에서 북한 주요 문예잡지 2년치를 한 글자도 안 빼고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구성한 쫀쫀한 디테일 덕에 그의 소설은 환상조차 근육질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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