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월급이 너무 적다’는 타령을 하는 교수 몇 분과 외국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말하는 형편과는 달리 이 분들은 뭘 많이 샀다. 명품은 돌아오는 기내에서 아내 화장품을 산 정도였고 학자들답게 책과 자료를 많이 사긴 했지만 가는 곳마다 비싼 카페트나 지역 명물을 꼭 사들였다. 돈이 없다는 분들이 저런 물건을 뭐하러 사들일까 싶으면서도 학자라서 민속학적인 관심사를 놓칠 수 없나 보다 정도로 이해했다. 하필 귀국하고 두어달쯤 지나 대학교수의 임금에 대한 조사자료가 발표됐는데, 그 분들의 월급은 내 수입보다 훨씬 많았다.
무슨 위원회에 가면, 방송사 간담회에 가면 참석비가 너무 적다는 변호사, 작가, 기타 등등의 전문가들을 만난다. 다들 거기서 받는 돈은 부수입인데도 꼭 타박을 한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는데, 이 담당자가 ‘원고료가 적어서 너무 죄송하다’는 메일을 세 번이나 보냈다. 청소년들한테 독서를 권유하는 글에 장당 1만원인 고료는 절대 적지 않았다. 그 동안 원고료가 적다고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이 담당자를 타박한 것일까.
■ 버는 돈이 늘 부족하다는 중산층
돈을 못 벌어서 걱정이라는 대기업 부장도 검사도 사업가도 의사도 언론인도 만난다. 그 사람들 골프도 치고 자녀들 학원도 보낸다. 과외도 시킨다. 여윳돈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늘상 돈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돈을 조금 벌어서 생활이 허덕인다는 어느 교직자, 알고 보니 자녀를 외국 유학 시키고 있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을 하면서 늘 돈을 남들보다 못 번다고 불평이다.
진짜로 못 버는 사람은 못 버니까 못 번다고 하고 좀 산다는 사람도 못 번다고 한다. 돈을 못 벌어서 걱정이라는 것은 한국인들의 입버릇이 되었다. 돈 돈 돈 하지 않아도 살만한 전문가들이 늘 아쉬운 소리이고 예술가들까지 경제적 지원이 부족해서 좋은 작품을 못 내놓는다는 듯이 당당하게 주장한다. 인문학도 우주공학도 돈이 없어서 문제이고 모든 논의의 끝에는 ‘지원이 필요하다’가 결말이다.
평균 이상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돈을 못 번다고 여기는 것은 주변에서 돈을 더 많이 쉽게 버는 사람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공돈이 넘쳐 나고, 별 노력도 안하고 그 돈을 거머쥐는 사람들을 보면 정규 수입만으로 사는 자신은 돈을 참 못 버는구나 싶을 것이다. 게다가 수입이 마치 유능함의 척도인 것 같은 가치관이 퍼져나가면서 돈을 못 벌면 스스로 초라하게도 여겨질 수 있다.
■ 정신적 결핍 못 벗어난 삼성 회장
그런 분들을 위해 말씀 드리자면 세상에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 고만고만하게 벌고 산다. 그 이상 지나치게 번다면 과로를 하는 것이거나 부정한 방법을 쓰는 것이다. 어느 쪽도 부러워서 따라 할 일은 아니다. 부동산 투기로 돈 번 사람들, 자식농사에 다 쏟아 붓는 것 많이 본다. 그러니 돈을 못 번다고 비교하면서 엉뚱한 의욕을 낼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중심을 잡지 못하면 삼성 짝이 나고 올바른 정치를 한다면서 의원 자리를 걸고 뒷돈을 챙기는 정당이 된다. 세계적인 기업의 대주주이자 경영자로 받는 수입은 성에 차지 않아서 보험 가입자들의 푼돈을 빼돌려 개인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 얼마나 궁핍한 정신인가. 채워도 채워도 돈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채워지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너도 나도 돈은 더 벌면서도 계속 부족하다, 모자란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이 눈물겨운 가난은 저 옛날의 보릿고개보다도 집요하게 한국인의 심성을 갉아먹고 있다. 마침내는 온 국토를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드는 욕망도 바로 이 정신적인 허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주위를 둘러보라. 초록은 눈부시고, 나무는 자라나고 있다. 수선화가 진 자리에 작약 봉오리가 벙글고 있다. 우리는 가난하지 않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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