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5시께 서울 종로구 세종로 주한미대사관에서 갑자기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전력이 공급하는 전기를 내부로 보내는 수전시설이 고장나 전기가 끊긴 것이다. 대사관측은 즉시 전 직원들에 '정전으로 오늘은 휴무하니, 출근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 대사관 직원들은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고, 미처 통보내용을 확인하지 못해 출근한 직원들도 오전에 곧바로 퇴근했다.
문제는 그 다음 발생했다. 대사관 측은 이날 정전 사고로 비자 인터뷰와 이민 신청 등 모든 업무가 마비됐는데도 비자 인터뷰 등을 예약했던 사람들에게 미처 통보를 하지 않았다.
또 비가 내린 뒤의 쌀쌀한 날씨 속에서 비자 발급 신청을 위해 대사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원인들에게는 사고 발생 후 3시간이 지난 오전 8시께야 휴무 사실을 알려 큰 불편을 겪게 했다. 대사관 측은 처음에는 보안요원이 건물 외벽에 '휴무' 안내문만 붙인 뒤 아무런 추가 설명 없이 민원인들에게 돌아갈 것을 재촉했다.
그러다 민원인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오전 8시가 조금 넘어서야 당직 직원이 나와 '정전으로 업무를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직원은 지방에서 올라온 일부 민원인들이 보상을 요구하자 영어로'그럴 의무가 없다'고 말한 뒤 바로 건물로 들어갔다.
주한미대사관의 안하무인식 태도에 헛걸음을 한 민원인들은 일제히 분통을 터뜨렸다. 전북 익산에서 새벽 차를 타고 상경한 이모(41ㆍ여)씨는 "직장 동료들이 감사 때문에 굉장히 바쁜 상황에서 미국 출장 때문에 일부러 휴가를 내고 왔는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우모(47)씨도 "인터뷰 예약자들에게 문자메시지라도 보냈다면 이런 불편을 겪진 않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김모(30ㆍ여)씨는 "이번 사건은 결국 미국이 한국인들을 깔보고 있다는 걸 뜻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사관 측은 이날 오후에야 뒤늦게 "예약자들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노력했으나 여의치 못했으며, 죄송하다"고 해명했다. 또 인터뷰 예약자 1,000여명에 대해서는 다음달 23일까지 대사관을 방문하면 우선적으로 업무를 처리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전기는 오후 2시15분께부터 공급이 재개됐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김청환기자 k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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