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천덕꾸러기 자식이 어느날 갑자기 금의환향하는가 하면, 잘 나가던 인사가 하루아침에 개털이 되기도 한다. 오르락내리락 변동을 먹고 사는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스타가 마냥 오늘의 히어로(영웅)일 수 없다. 정점에 다다르면 새로운 얼굴에게 바통을 넘기고 무대 뒤로 쓸쓸히 퇴장한다.
올해 반등의 주역으로는 단연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은행이 꼽혔다. 이들은 2년 가까이 절치부심한 끝에 증시 상승의 트로이카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스포트라이트가 바뀌면서 지난해 시장을 주도하며 웅비했던 조선은 잊혀졌다. 주가는 반토막이 났고,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흘러나온 비난(아직도 너무 비싸다)에 설움도 당해야 했다. ‘중국 관련종목’이란 타이틀도 명예에서 오명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최근 조선이 힘을 내고 있다. 속절없이 잊혀지기엔 너무 억울했던 것일까. 시장은 23일 현재 기관을 중심으로 사흘 연속 조선주 ‘사자’ 행진을 벌이고 있다. 22일 약세장에도 강세를 보이며 지수의 추가 하락을 저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덕분에 조선기자재주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조선주가 자력갱생하자 시장도 차츰 호응하는 분위기다. 증권사들은 한동안 소외됐던 ‘조선주의 재발견’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화려하고 길었던 무사고 항해로 피로가 쌓인 조선주가 잠시 정박을 했을 뿐 다시 순항할 차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주의 부활은 무엇보다 실적에 기대고 있다. 올 1분기에 현대미포조선 STX조선 한진중공업 등은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가 기대되고, 모든 조선업체의 1분기 영업이익 증가율도 40%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조선에 대한 실망이 실은 기우였다는 방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인수ㆍ합병(M&A) 호재까지 겹쳤다. 더구나 조선업계의 2분기 실적은 1분기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적개선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현실(주가)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최근 며칠을 제외하곤 1년 사이 조선의 주가는 속이 탈 정도로 많이 무너져내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조용준 신영증권 연구원은 “후판 가격 상승과 선가(船價)의 일시정체에 따라 조선업체의 실적 개선 폭이 다소 둔화하고 정체할 가능성도 있지만 장기적인 실적개선을 감안하면 오히려 주식(조선) 매수의 좋은 기회”라고 주장했다.
다가올 외부환경도 아직은 조선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속삭인다. 중국 조선산업이 겪고 있는 삼중고(납기지연, 후판 및 엔진 부족, 위안화 강세)가 우리나라 조선업계엔 효자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하반기 이후엔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독점적 지위가 탄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우리나라 조선의 호황은 2009년이 끝이라는 주장이 많으나 공급부족으로 호황 기간도 늘어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대표주로는 현대중공업(세계 1위 업체, 2008년 최대 수주)과 현대미포조선(깜짝 실적, 상대적 저평가), 대우조선해양(M&A)이 거론되고 있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선업체별 1분기 영업실적은 양호한 실적이 전망된다”며 “조선업종 내 대표주로 올 영업실적 증가와 M&A 이슈가 부각되는 대우조선해양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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