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냉정했다. 그룹의 수장이 사라진 상실감을 악재(불확실성)로 받아들였다.
삼성그룹의 ‘경영 쇄신안’은 22일 증시에선 삼재(三災)로 작용했다. 우선 예상을 초월한 이건희 회장의 퇴진은 경영공백에 대한 우려로 시장에 반영됐다. 반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부재는 실망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그동안 기대심리로 끌어올렸던 주가 상승에 대한 피로까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날 삼성그룹 계열사의 주가는 대부분 하락했다.
지주회사 전환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던 삼성물산이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이 현 정부에서 금융중심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사실상 포기하자 삼성물산 주가는 9.01%나 급락했다. 계열사 중 낙폭이 가장 컸다. 일주일째 조금씩 상승한 것을 하루 만에 반납한 형국이다. 계열분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으면서 호텔신라(-7.41%)와 제일모직(-3.77%) 등의 비금융 주력사도 운명을 함께 했다.
그나마 호재가 있었던 삼성증권(-4.78%)과 삼성화재(-3.30%)도 버티지 못했다. 삼성이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고 비은행 금융회사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삼성증권과 삼성화재에 긍정적이었지만 그룹의 수장을 잃은 데다 각각의 최고경영자(CEO)까지 사임해 아픔이 더했다.
이밖에 삼성SDI(-2.21%) 삼성엔지니어링(-3.95%) 삼성전기(-0.91%) 삼성테크윈(-1.83%) 삼성중공업(-0.88%) 에스원(-1.48%) 등도 동반 하락했다.
삼성카드는 극적으로 반등에 성공(1.27%)했다.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위해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을 4~5년 내에 처분할 것이란 소식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는 0.15% 올라 체면치레를 했다. 제일기획(2.72%)과 크레듀(2.73%) 등 쇄신 발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일부 계열사는 올랐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발표를 단기 악재로 보고 있다.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은 “국내에 몇 안 되는 세계적인 CEO인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건 경영공백 등 기업 안정성 측면에서 부정적이고, 지배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 실망 매물도 나올 것”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나쁠 게 없다는 전망도 뒤따랐다. 잠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펀더멘털(기초체력)과는 무관하다는 것으로 ‘맞을 매는 다 맞았다’는 논리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6개월 이상 끌어온 특검도 끝났고, 이번 발표로 투명경영, 본업 충실(은행업 진출 포기) 등의 의지도 밝힌 만큼 하반기엔 설비투자를 공격적으로 할 것”이라며 “특히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정밀화학 등이 혜택을 누리고 지금껏 힘들었던 납품업체의 동반 상승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로 희망의 싹을 틔운 계열사도 있다. 이종우 현대차I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은 국내에서 조직이 가장 잘 갖춰진 기업이라 곧 정상궤도에 오를 것이고, 뉴스 임팩트(영향)가 잦아들면 시장도 안정을 찾을 것”이라며 “우선 금융중심 지주회사의 대안으로 떠오른 증권과 화재에 힘을 실어주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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