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으로 사임한 엘리엇 스피처 전 주지사 후임으로 지난달 17일 취임한 데이비드 패터슨(53ㆍ사진) 뉴욕주 주지사는 중증 시각 장애인이다. 왼쪽 눈은 아예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도 색과 큰 물체만 식별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안구 퇴화 증세를 겪다 시신경을 다친 이후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왔다.
시각 장애인 주지사의 공직 생활은 수십년간 장애인으로 살아온 그로서도 극복이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하루에도 수십건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21일 그가 올버니(뉴욕주 주도)의 관저에서 비장애인에 못지않은 주지사로 일하기 위해 매일 어떤 우여곡절을 겪는지를 소개했다. 그 중 하나가 ‘배트폰(Batphone)’이다. 시력이 없는 박쥐 이름을 딴 이 전화로 보좌진은 매일 전화를 걸어 다음날 예정된 일정과 현안, 각종 메모, 만날 인사들의 프로필 등을 소리로 녹음해 둔다.
보고 분량은 각 5분으로 제한하지만 워낙 많은 보고가 올라오다 보니 매일 엄청난 분량이 쌓인다. 그가 이 녹음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패터슨 주지사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지난밤에는 43건의 메시지가 녹음됐는데, 전체가 215분에 달해 절반 밖에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설할 때 프롬프터를 볼 수 없다 보니 녹음 내용을 수차례 반복해서 듣고 외워야 하는 것도 고충 중 하나이다. 행사에 참석하는 길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는 길을 안내하는 경호원들에게 그가 누구인지 속삭이지 말고 일상적인 목소리로 얘기하라고 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다.
수십년 동안 장애인으로 익숙하게 살다 보니 그가 장애를 갖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프로야구 뉴욕 메츠 홈경기에서 시구를 했을 때, 20년 동안 몸담았던 주의회 의사당 복도를 거침없이 걸어다닐 때가 그런 경우다. 손바닥의 느낌으로 소금과 후추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나름대로의 적응력도 갖고 있다.
그는 색깔이 다른 짝짝이 신발을 기자회견장에 신고 나와 폭소를 자아낸 일, 지하철을 타고 가다 숱하게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던 일 등을 소개하며 “나를 위해 굳이 수고를 할 필요는 없지만 장애인이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