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경영일선 전면퇴진이라는 초강수를 두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이회장이 퇴진까지 결심한 배경은 무엇이고 이 결심에 영향을 미친 브레인은 누구인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그룹 경영체제의 변화조짐이 이회장의 퇴진으로까지 이어진 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룹은 물론 재계 전체에 큰 충격을 몰고온 사안인만큼 뒷얘기도 없을 수 없다.
■ 언제부터 퇴진을 결심했나.
이 회장은 삼성특검 수사가 진행되던 3개월여 전부터 깊은 고민과 장고를 거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일선 퇴진을 본격적으로 떠 올린 것은 삼성특검 수사발표가 있기 전인 지난 3월부터였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갖고있다. 이회장은 3월 말 이 같은 자신의 의사를 그룹 핵심 관계자들에게 내비쳐왔다는 사실이 경영쇄신을 발표한 22일 이학수 부회장을 통해 언급되기도 했다.
이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계기는 특검에 두번째로 출두했던 4월11일 이회장의 발언이다. 이회장은 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 아랫사람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말했었다. 단순하게 언급된 것이 아니라 ‘준비된 메모’를 보고 읽는 정도의 발언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회장직 퇴진을 뜻하는가”를 집중적으로 물었으나 그룹 관계자들은 “확대해석하지 말 것”을 강력 주문했다. “그룹 여건상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는 말도 덧붙였다.
경영쇄신안 발표일, 그룹 고위 관계자는 “당시 이 회장의 발언으로 경영 최고지도부에서도 혼란이 가중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수사결과 발표가 나기 전까지는 회장의 입장표명은 이르다는 쪽과 회장이 이미 마음을 결정한 상황에서 구태여 이를 언론사에게 일일이 수정해가며 회장의 뜻을 숨길 필요가 있느냐는 논란도 있었다”고 털어봤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결국 수사결과를 지켜본 후 회장의 거취문제를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며 “그 때까지만 해도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 결심을 스스로 재고해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 가족들과의 의견교환은 어느정도
이 회장은 특검이 이뤄지던 조사기간 내내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회장 비서실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승지원으로 찾아갈 것인지를 물었더니 한남동 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이 회장은 삼성에 몰아 닥친 위기상황에 대해 마음을 열고 부담감도 버리고 얘기해줄 것을 요청했고 집착을 버리면 만사(萬事)를 얻는다는 ‘버림의 철학’에 대해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경영쇄신안에 가족들과의 협의를 어느정도 담았는지도 관심이다. 홍라희여사의 미술관장직 퇴진과 이재용전무의 ‘바깥 경영’이란 또 다른 카드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어느정도의 의견교환은 불가피했을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그룹관계자들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으면서도 최소한 이전무의 경우 이회장의 결단에 상당한 의견교감을 가졌을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다.
재계는 따라서 이 회장의 퇴진 결정이 결국 이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충격처방’이란 해석도 내리고 있다. 그만큼 자신을 버림으로써 경영권 승계부분에 대한 갖은 질책을 덮겠다는 헌신적인 ‘부정(父情)’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룹내에서는 “경영일선에서의 전면퇴진이 오히려 이전무로의 순조로운 승계에 짐이 될 것인지까지 이회장은 고민했다”는 말도 하고 있다.
■ 발표문 작성까지 누가 주도했나
이 회장이 퇴임 발표를 하던 단상 가장 가까이 앉아있던 사람은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이다. 그는 이 회장의 곁에서 퇴진 결심 순간에서부터 경영 쇄신안 발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을 줄곧 지켰다. 누가봐도 매순간 이회장 곁에서 전반적으로 의견을 나눴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룹 고위관계자들은 “이번 결정은 전적으로 이회장 스스로의 판단“이라고 한목소리들이다. “이회장에게 퇴임하라는 의견을 누가 낼 수 있겠느냐”는 말도 덧붙인다. 결국 그룹 경영체제에 일대 변화를 몰고온 이회장의 전격 사임은 지인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이회장 스스로 내린 ‘고뇌에 찬 결단’이라는 얘기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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