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대운하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함 그 자체다. 한동안 찬반이 엇비슷하더니 최근 수개월 동안에는 계속 반대 비율이 압도적이다. SBS와 중앙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총선 직후인 10, 11일 성인 남녀 1,1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이 23.5%, 반대가 66.6%다.
여론만 나쁜 것이 아니다. 13, 14일 한국일보가 18대 의원 당선자 299명 중 2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찬성이 47명(19%), 반대가 135명(54%), 모름ㆍ무응답이 69명(27%)이다. 대운하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제로가 된 것이다.
효력이 다른 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이 없으면 대운하 추진은 꿈도 못 꾼다. 수도법 하천법 등 무려 58개나 되는 법률을 모두 개정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 첫 삽을 뜨기 위해서는 특별법이 꼭 필요하다.
국민과 국회가 다 싫다고 해 어차피 물리적으로 추진이 힘들어진 상황이라면 대운하를 지금 시점에서 포기하는 게 낫다. 안 되는 패를 들고 계속 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한나라당은 이번 총선에서 대운하 공약을 뺐다. 표를 얻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도 나쁜 여론을 의식했는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대운하의 필요성을 다시 역설한 것으로 보아 여론 수렴과 전문가 의견 청취는 단지 통과의례고,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한 것 같다.
만약 그런 의중이라면 무척 어리석다. 대운하를 강행할 경우 관련 일정이 하나하나 진행될 때마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공세가 무섭게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지금의 여론을 감안하면 민란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입고, 지지율도 곤두박질할 것이다.
임기가 1년쯤 지난 시점에서 조기에 레임덕(임기 만료를 앞둔 공직자의 권력 누수 현상을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한 말)이 올 수도 있다. 그 때 가서 떠밀려 대운하를 포기한다면 이 대통령에게 도움도 되지 않고 모양도 무척 우습다.
반면 정권 초기에 그나마 힘이 있는 상태에서 철회할 경우 공약 포기라는 아픔과 상처가 있겠지만 그래도 레임덕 같은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보기 좋게 포기하는 방법을 찾으려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대통령이 누차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듣고 결정하겠다고 했으니 이에 따르면 된다. 각 정당, 시민단체, 전문가가 참가하는 대운하 방송토론을 2, 3번 한 뒤 전국단위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여론조사에서는 반대가 많이 나오게 된다. 그러면 이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을 갖고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면 된다. “하고 싶었는데, 경부고속도로처럼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아쉽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대운하를 포기하겠습니다. 공약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지만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대운하 말고도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릴 방법이 저에게는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그걸 해내겠습니다.”
이런 발표를 한 다음날 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10% 포인트는 올라 있을 것이다.
이은호 정치부 차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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