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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다시 읽는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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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다시 읽는 이병주

입력
2008.04.2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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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1970년대 말)는 정말 그들 이야기가 가슴 뭉클했다. 감옥에서 섬세하고 정교한 7cm 짜리 <쥘부채> 를 만든 여죄수 신명숙도, 해방 공간에서 삶과 꿈이 좌절된 <관부연락선> 의 유태림도, 학병을 거부하고 <지리산> 에 들어간 회의주의적 공산주의자 하준규도, <소설, 알렉산드리아> 에서 이국의 감옥에 갇힌 형도. 라디오 드라마 <관부연락선> 도 다시 소설 읽는 마음으로 들었다. <매화나무인과> 의 마지막 ‘天網恢恢 疏而不漏(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 는 <노자> 를 읽어보게 만들었다.

▦대하소설 <산하> <그 해 5월> <행복어사전> <바람과 구름과 비> 에서 <낙엽> <마술사> <예낭풍물지> <망명의 늪>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까지, 이후에도 나림(那林) 이병주(1921~1992)의 소설은 내 독서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문학평론가 김종회의 평가처럼 이야기적 재미가 있고, 박학다식한 문장들이 인문적 사고의 내면을 확장해 주었고, 작가의 체험적인 역사공간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질곡의 한국현대사를 살아간 인간군상의 상처와 비극이 아팠고, 그 속에서 소중한 ‘휴머니즘’을 발견하곤 했다.

▦그 때는 섣불리 “이병주 소설이 좋아. 대단해” 라고 말하지 못했다. 최인훈 조세희 송기숙 현기영 김지하를 읽어야 하는 시대에 이병주 소설은 잘난 부르주아 지식인의 영웅주의와 이념적 허무주의, 자기 연민에 불과해 보였다. 문단과 언론의 시선도 비슷했다. 고은은 ‘이데올로기를 이데올로기 멜로드라마로 그리는 사람, 추억으로 노래하는 사람, 그의 소설들은 언제나 비현실적인 회한의 반동’이라고까지 했다. 한국일보만이 거의 유일하게 1977년 <망명의 늪> 에 한국창작문학상을 주면서 그를 인정했다.

▦ ‘기록자로서 소설가’를 자처한 이병주는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고 했다. 그의 소설은 월광에 물든, 그늘진 삶의 편린들이다. 여기에는 좌도, 우도 중요치 않다. 오직 ‘인간’이 있을 뿐. 그래서 평론가 임헌영은 “그의 소설이 다룬 시대적 고뇌와 민족적 비극의 접근비판 방법을 도외시하고 어떤 문학적 현실접근 작업이 가능할 것인가”라며 그를 “한국문단이나 독자 모두 거쳐야 할 산봉우리”라고 했다

. 늦었지만 그것을 확인하고 알리는 그의 문학제(24~26일)가 올해 일곱번째로 고향 경남 하동에서 열린다. 이념과잉시대에 인간을 버린 이념에 가차없는 매질을 한 이병주. 그의 소설은 분명 지금도 살아있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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