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 영희(19ㆍ여ㆍ가명)는 또래 고3생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 어눌한 말투와 굼뜬 행동이 금세 느껴진다. 는 지적장애 2급이다. 선천적으로 지능이 낮아 겨우 덧셈ㆍ뺄셈을 하고 한글을 읽는 수준이다.
하지만 삶에 도전하려는 의지마저 낮은 것은 아니다. 장애인의 날(20일)을 맞아 졸업 후 홀로서기를 위해 친구들보다 더 노력하는 영희의 하루를 동행했다.
18일 오전 7시.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주택가. 33㎡ 남짓한 방 두개짜리 빌라 3층에서 영희의 등교 준비가 시작됐다. 영희가 다니는 학교(경인고교)까지는 버스로 10분 거리. 정상 학생이라면 7시 30분에 움직여도 괜찮지만 영희는 행동이 느려 7시부터 준비해야 지각을 면한다.
20분간 옷을 입고 집을 나와, 혼자 버스를 타고, 오전 7시 45분 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영희가 들어선 곳은 건물 1층 3학년 특수학급 교실. 이미 출근한 담임 최경희(50ㆍ여) 교사가 영희를 반긴다. 곧이어 3~4세 지능의 지적장애 1급 호준(19ㆍ가명)이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준수(19ㆍ가명)가 들어 왔다. 처지는 다르지만 모두 최 교사가 맡은 특수반 학생들이다.
오전 8시10분,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영희가 제일 힘들어 하는 시간이다. 최 교사는 “졸업 후 정상인과 함께 하는 사회 생활에서의 고통을 인내하는 힘을 기르도록 매일 1~2교시는 일반 학생과 함께 공부한다”고 소개했다. 최 교사는 “내용을 전혀 모르니, 매우 힘들겠지만 이것도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영희는 5층의 3학년 6반 교실로 향했다. 이날 1교시와 2교시는 각각 지리와 국어 시간. 겉으로 보면 영희는 모범생이다. 옆에 앉은 친구는 벌써 졸고 있지만 영희는 교과서에 줄도 긋고, 설명도 열심히 듣는다.
그러나 그 뿐이다. 국어 담당 최태상(34) 교사는 “수업 태도는 좋지만, 아무 것도 알아 듣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우 지루할텐데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걸 보면 대견하다”고 말했다.
1, 2교시를 마치고 오전 10시, 1층 교실에 특수반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이제는 이들만을 위한 교육이 시작된다. 이날 수업은 원예와 디지털 사진 찍기, 만두 빚기 실습이다.
디지털 사진 찍기의 경우 의자에 앉은 친구를 무릎 위부터 머리까지만 사진에 담는 것이 과제인데, 모두들 열심히 하지만 제대로 하는 친구는 별로 없다. 제빵ㆍ제과 업체 취직의 관건인 반죽 빚는 솜씨를 기르는 만두 빚기 실습도 학생들의 열의에 비해 성과는 낮은 편이다.
특수반 담임인 최 교사는 “특수반 학생들이 홀로서기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만, 이들의 장래는 솔직히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사회 전반의 인식은 여전히 냉랭하다는 것이다.
최 교사에 따르면 한 직업학교는 ‘특수반 학생들은 가르치기 힘들다’며 직업 교육을 거부하고 있으며, 의무규정이 있어도 일반 기업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매월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은 것 만큼(1인당 50만원)의 부담금을 내고 있다.
최 교사는 “영희는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면 일반인과 화목하게 지내려고 방과 후에는 영등포역 인근 학원에서 재즈댄스까지 배울 정도로 열심”이라면서도 “여전히 두터운 사회의 벽을 넘지 못해 영희도 결국 대부분의 선배 장애인들처럼 집에서 갇혀 지내게 될 신세가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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