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패셔너블한 동네 생 제르망 데 프레. 총 20구로 나누는 파리 지도에서 제 6구에 해당되는 동네다. 장 폴 사르트르나 알베르 카뮈와 같은 지성인들의 아지트였던 카페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유서 깊은 카페들을 위시로 명품 부티크나 레스토랑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성이 가득하면서도 패셔너블한 동네라니, 정말 완벽하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생 제르망 데 프레의 어느 골목을 돌면 꽤 규모가 큰 불고기집이 있다는 사실! 상호는 ‘코리안 바비큐’(Korean Barbecue)지만 메뉴에는 ‘야키니쿠’(불고기의 일본 버전)가 있다. 프랑스 현지인들, 엄청 맛있게 먹는다. 평일 낮에 가도 자리가 제법 꽉 찬다. 그렇지, 맛있는 것은 누구의 혀에도 다 맛있는 법이지 생각하며 내 자리로 안내될 차례를 기다린다.
■ 야키니쿠
야키니쿠. 말 그대로 육고기 구이다. 일본에서 야키니쿠라 내건 집들은 테이블에 작은 화로를 켜고 고기를 구워 먹는 메뉴를 주로 하는 집이라는 얘기다. 소 혀, 갈비, 내장 등 다양한 부위를 구울 수 있는데, 그 가운데 불고기와 비슷한 양념을 한 고기도 메뉴에 있다.
갈비보다 짧게 자르고 평평하게 한두 번 두드린 다음, 칼집을 얕게 내고 양념에 주물거린다. 불고기 준비 과정과 비슷하기는 한데, 차이는 그 양념에 있다. 좀 더 달다. 그 이유는 일단 간장이 다르다. 우리 것과 일본의 간장 맛이 다르기 때문에 기본 간의 차이가 난다. 거기에 설탕이나 과즙으로 더욱 달큰하게 만들고 굽는 방식도 다르다.
우리는 보통 불판에 한번씩 넉넉히 올려 굽거나 석쇠에 가득 차도록 펴 얹고 굽지 않나. 야키니쿠는 한 점씩 두 점씩 굽는다. 천천히 불에 올리고 앞뒤로 한번씩 구워서 밥이랑 혹은 한국식으로 야채랑 먹고 다시 다음 조각을 한 점씩 두 점씩 굽는다.
■ 화려한 한식, 불고기
불고기.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침이 고이는 음식이다. 비교적 간단한 양념 공식만 한 번 익히면 준비 과정도 쉬운 편. 준비에 비해 구운 불고기가 만들어내는 감동은 일파만파다. 양념이 적당히 밴 고기를 불판에 올리면, ‘축제의, 경축의, 명절 기분의’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festive’가 절로 생각난다.
지글지글, 자글자글 촉촉한 양념이 육즙과 함께 삐져나오면서 맛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간장과 배 즙, 꿀이나 설탕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양념이 불에 달궈지면서 온 방에 퍼진다. 생고기를 굽는 과정이 우직한 남성의 이미지라면, 불고기를 익히는 과정은 애교 많고 웃음소리가 명랑한 여성의 이미지다. 물론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불고기의 추억, 불고기 명가들
내가 불고기를 ‘외식 메뉴’로 처음 접한 곳이 우래옥(02-2265-0151)이었다는 사실은 내가 음식을 업으로 하는 데 있어 큰 자부심이다. 1946년 겨울에 오픈했으니 우래옥의 역사는 반세기가 넘은 셈이다. 고인이 되신 창업주는 평양 분이었고 지금은 그 분의 아드님과 손자분이 대를 이어 음식 맛을 전하고 있다.
실향민이었던 내 할아버지는 우래옥 냉면을 정말 일주일에 두 번은 드셨던 것 같다. 씀씀이가 ‘짰던’ 할아버지께서 유일하게 지갑을 푸셨던 곳도 우래옥. 집안의 좋은 날이나 자식들에게 가끔 ‘쏘는’ 날에는 어김없이 우래옥의 불고기가 등장했다.
물론 가격이 비싼 메뉴라 꼬맹이 손녀였던 나는 맛만 보다 말아야 했지만. 아직도 그 맛이 여전한 불고기 냄새는 가족들에게 좋은 일이 있던 순간에 먹은 ‘행복의 양념’으로 내게 기억된다. 부드러우면서도 너무 흐물거리지 않고 양념이 은은하면서도 넘치지 않는 그 맛!
스타일이 다르지만, 유명한 또 한 곳의 불고기 명가는 경기 하남시의 마방집(031-792-2049). 장작불에 납작 구워져 나오기 때문에 지글거리며 익는 고기를 구경하는 맛은 덜하지만 장작불이 주는 특유의 감칠맛과 ‘겉 바삭, 속 촉촉’ 식감이 매실주 한 잔을 절로 부른다.
지금의 마방집은 조선시대에 말을 갈아타던 주막이 있던 자리라는데 주막 음식으로부터 출발하여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고 오늘날 갖은 나물이 곁들여지는 반듯한 한정식이며 장작에 구운 불고기를 전하고 있다.
맛있는 불고기집 한 곳만 더 얘기하자. 전주 완산구 중앙동의 신 한양 불고기(063-283-7331). 한갓진 전주 객사 뒤로 골목을 따라 걸으면 찾을 수 있다.
같은 자리에서 30년째, 불판에 풍성한 야채와 간이 딱 맞는 고기가 올려진다. 야채와 함께 익어서인지 고기 맛이 촉촉하다. 미나리와 곁들여 입 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다가 공기밥에 따라 나오는 콩나물국을 떠먹으면 행복이 밀려온다.
■ 꼭 지켜야 할 우리 문화
일본에서는 재작년에 ‘불고기’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었다. 재일동포 감독이 만든 영화로 불고기를 통해 가족애와 밥 한 끼의 소중함을 그렸다. 인기 일본만화 ‘맛의 달인’에서도 불고기는 등장한다.
우리에게는 5,000枰Ⅸ?‘뚝불’로 치부되는 불고기가 다른 나라에서는 화려하고 귀한 ‘요리’로 주목을 받은 지 오래다. 눈 뜨고도 코 베이는 경쟁시대다. 이미 갖고 있는 화려한 우리 문화 불고기를 꼭 붙잡고 지켜내자.
박재은ㆍ음식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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