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16> 홍콩행 비행기에 올라 그녀에게 쓴 엽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16> 홍콩행 비행기에 올라 그녀에게 쓴 엽서…

입력
2008.04.21 09:04
0 0

비행기가 쌍발 프로펠러를 시끄럽게 돌리며 활주로를 벗어나기 시작하자 비로소 이 땅을 떠난다는 느낌이 났다. 마치 우주선을 타고 우주비행을 떠나는 심정과도 같았다. 아득한 미지의 세계로, 사랑하는 나의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나는 떠난다. 어느새 까마득히 멀어져 가는 땅끝자락. 내 고향, 한국... 파란 바닷물이 춤을 춘다.

기내에는 드문드문 외국인들 뿐, 한국인이라고는 나 밖에 없다.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안내방송이 영어와 중국어로 흘러나온다. 방송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승객들이 안전벨트를 하는 것을 훔쳐보고 재빠르게 따라했다. 나는 당분간 이렇게 눈치 빠르게 생활해야 할 것이라며 혼자 빙그레 웃었다.

비행기의 요동이 심해지자 멀미가 났다. 화장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섰으나 변기가 없고 하얀 뚜껑이 덮인 항아리 하나가 보였다. 슬그머니 뚜껑을 열어보니 그림으로 사용법이 있었다. 변기였다. 나는 어색하여 문을 열고 나왔다.

어느새 창 밖은 검붉은 태양이 구름사이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둠이 흐르기 시작했다. 프로펠러의 뜨거운 열기가 불빛을 타고 너울댄다. 암흑이다. 문득 박용철의 시 ‘떠나가는 배’가 떠올랐다.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두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나는 결코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모르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녀’ 곁을 떠나기 싫었다. 나는 그녀에게 떠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 긴 시간 편지를 보냈던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1962년 여름, 여름비가 장대같이 내리던 아침 등굣길. 한참 문학에 빠져있던 고등학교 1학년, 16세 때였다. 나는 그 굵은 빗속에서 하이네의 ’ “Du bist wie eine Blume. So holt und ...”를 읊조리며 가회동 골목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경사를 따라 흐르는 물줄기가 내 운동화 꼭지를 타고 넘었다. 물줄기가 점점 거세져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때 그 물줄기를 따라 하얀 운동화가 사뿐사뿐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검은 물결을 타고 하얀 돛단배가 나를 향해 춤을 추며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고개를 들었다. 한 여학생이 빨간 우산을 쓰고 한 발짝 한 발짝 나에게 물장구를 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히듯 서버리고 말았다.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 앞으로 다가와 지날 때까지는... 길고도, 긴 아주 오랜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나의 호흡과 눈동자는 완전히 정지되었다. 그것은 영원이었다. 나는 그 영원의 망부석이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일요일도 그 시간, 그 길을 걸었다. 2학년이 되었다... 3학년이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글을 써서 보내기 시작했다. 이름도 주소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냥 글을 썼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쓰고 또 썼다.

그녀의 집 담에 기대어 잠들다가 파출소에 잡혀가기도 하였다. 복막염이 걸려 배를 째기도 하였다. 폐결핵 진단이 나왔다. 학교 성적은 대학입시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대학을 떨어지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유령처럼 휘적거리며 그 골목을 찾았던 어느 날, 그녀가 골목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고, 화사한 양장차림에 이화여자대학 배지를 달고 나를 향해 웃으며 오고 있었다. 그리고 매정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폐인이 되어버린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 날 이후 나는 그 골목을 찾지 않았다. 편지 쓰는 것도 중단하였다. 나는 허상이었다. 싫고 미웠다. 무능하고 부끄러웠다. 죽이고 싶었다, 내가. 그러나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나와 싸우고 싶었다. 바보가 된 나를 일으키고 싶었다. 나는 창피도 비굴함도 없었다. 죽기 살기로 하였다.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다. 드디어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제 나는 홍콩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 골목 그 자리로 가야한다. 나는 반드시 그녀를 만나러 가야한다.’ 주머니에서 펜을 꺼냈다. 나는 지금 세계적 배우를 꿈꾸며 비행기 1등석에 앉아있다. 기내엽서에 그녀에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2년 반 만이다. 손이 떨렸다. 나는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썼다. 이 때 중간 급유를 위해 ‘타이페이’ 공항에 착륙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스튜어디스에게 엽서를 건네주며 곧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러브레터?”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처음 본 후 10년간 한 번도 그녀를 만난 적이 없었다. 26세 되는 해, 내 생애의 가장 소중한 일을 기적같이 해 냈다. ‘나의 사랑, 그녀’와 결혼 했다. 16세 때 여름비가 내리던 그 골목, 망부석이 됐던 내가 10년 후 영원히 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두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결혼 첫 날 밤 나에게 선물보자기를 풀어 보여주었다. 산더미 같은 편지가 쏟아져 내렸다. 오늘, 4월21일이 그녀와 결혼한 지 36년 되는 날이다.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