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쏟아내고 있는 대북 발언이 예사롭지 않다. 이 대통령은 동포간담회나 미국 CNN,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보다 유화적이고 전향적인 대북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15일 뉴욕 동포간담회에서 “남북관계는 특수한 관계”라고 언급한 데 이어 18일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는 서울-평양 상설 연락사무소를 제안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식량위기는 인도적 문제로 경제협력과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방미 전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한의 발전적 관계형성을 위해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북 메시지는 상호주의와 국제적 기준을 강조했던 기존 발언이나 입장에서 한 클릭 이상 유연해진 것이며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제스처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남북대화 채널이 끊긴 상태에서 외신을 이용,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대화제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대통령의 적극적 대북발언에는 두 가지 측면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가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북핵 문제가 일정한 진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다 북한의 식량위기가 가시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우선 북미의 싱가포르 잠정합의로 북핵 문제가 핵 폐기 단계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어 명분으로나 실리적으로나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또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가 북한의 식량부족을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파종기에 대북 비료지원을 실기(失機)할 경우 상호주의라는 틀에 묶여 인도적 지원을 외면했다는 국내외적인 비판은 물론 남북관계의 장기경색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한에 인도적인 도움을 주는 데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뉴욕 동포간담회)” “북한주민의 식량위기는 인도적 문제”라는 발언은 대북 식량ㆍ비료지원 재개의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협동농장의 작물 시비(施肥) 시기와 비료 운송기간을 감안할 때 이 달 말 내지 내 달 초까지는 남북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다. 핵 공격 대책에 대한 김태영 합참의장의 국회발언을 빌미로 남북접촉을 중단하고 위협적 발언을 해온 북한이 이 대통령의 ‘고공 메시지’를 계기로 대화로 나오면 남북관계는 진전될 수 있다. 그러나 실리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존심을 지키는 쪽으로 가면 남북간 갈등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