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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피델 카스트로 마이 라이프

입력
2008.04.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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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라모네 지음ㆍ송병선 옮김/현대문학 발행ㆍ716쪽ㆍ3만2,000원

“부패의 싹은 항상 존재합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싹의 원천입니다. 자본주의가 마피아를 만들었어요. 사회주의에도 그런 싹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필요한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소중한 가치를 심어야 하고 부패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싸웠고,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386쪽) 소련 붕괴 이후의 혼란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 쿠바의 전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82)는 말했다.

미국을 턱밑에서 조롱하며 20세기를 주름잡은 인물과, 프랑스의 좌파 지성인 이냐시오 라모네가 2003년부터 2년에 걸쳐 100여 시간동안의 밀착 대담을 이뤄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뤄진 인터뷰에서는 ‘대안 세계’의 꿈과 청사진이 생생히 공개됐다.

“그가 허락한 대담 중 가장 길고 완벽한 인터뷰”(23쪽)가 문자화된 것이다. 미국을 선두로 하는 자본주의적 세계에 대한 증오와 경멸, 체 게바라 등 역사적 인물들과의 인연은 카스트로의 피를 여전히 끓게 한다. 살아서 역사와 전설이 되고, 나아가 영광까지 누린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막 권좌에서 물러난 지금, 카스트로야 말로 바로 그런 인물임을 책은 증명한다.

미국 중심의 색안경으로 세계를 바라보아야 했던 연유 등으로 해서, 우리에게 쿠바란 나라는 격외(格外)의 세상이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정도가 고작이었다. 미국과 구 소련을 오가며 쿠바를 일궈낸 “20세기 세계 정치의 마지막 괴물”을 이냐시오 라모네가 ‘정밀 취조’한 결과가 700여쪽의 분량으로 환생했다.

독자들은 HD TV를 보듯 카스트로의 기억을 추체험한다. 어렸을 적 싸움부터 차베스의 권좌 복귀 등 최근의 사건까지 종횡으로 내달린다. 특히 연도와 사람 수 등 수치에 대한 기억은 컴퓨터처럼 정확하다.

“풍부한 논증을 바탕으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운 수사적 말솜씨”를 가진 카스트로와의 대담은 지구상에서 자본주의 아닌 또 다른 세계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추출한다. 1,100만명의 인구에 10만㎢ 면적의 작은 나라가 “커다란 힘으로 세계 차원의 정치를 이끌어가게” 한 원동력이 바로 그의 지도력이다.

미국 중심의 세상에 길들여져 온 사람들에게 책은 화염병 불꽃이다. 카스트로는 쿠바가 툭하면 인권 침해국으로 규탄 받는 현실에 대해서 분노를 표한다. 그는 “쿠바보다 인권 문제에서 깨끗한 나라는 없다”며 “구걸, 실업, 마약, 노름도 자취를 감췄지 않았느냐”고 항변한다. 쿠바 혁명이 일어난 후 46년이 지났지만, 아이젠하워에서 아들 부시까지 10명의 미국 대통령과 싸워 온 이 역전의 노장이 미국에 대해 품고 있는 반감은 여전하다.

인터뷰에서 카스트로는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며 레닌주의자인 사회주의자이며, ‘사회적 관점에서’ 기독교인이라고 확신한다”고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입지점을 밝혔다. 그러나 책은 그에 앞서 그가 영원한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 쿠바 독립 투쟁의 신화적 인물인 호세 마르티를 “가슴 속에 지니고 산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카스트로의 상징처럼 돼 버린 수염과도 무관하지 않다. “산 속에 있었을 때(게릴라 시절) 면도할 도구도 시간도 없었던 우리는 모두 수염이 길 수밖에 없었고, 그게 일종의 신분증처럼 된 것이죠.”(221) 체와의 만남, 3,000여명으로 8만을 이긴 쿠바 혁명, 600여 차례 이뤄진 암살 기도, 미국의 압력 등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을 어제 일처럼 호출해낸다.

카스트로가 권좌에서 물러난 지난 2월, 동생 라울이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취임하고 개혁 정책을 펴고 있다. 그렇지만 쿠바인들은 상어가 득실대는 플로리다 해협을 건너 미국으로 잠입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책은 그가 “미국에 수감돼 있는 쿠바의 영웅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한다.

동시에 책은 카스트로의 이성적 판단에 대해서도 빛을 쏘인다. 그는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은 일은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혹평하지만, 카터 대통령에 대해서는 “엄청난 특권을 지닌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가장 훌륭했다”고 칭찬했다. “윤리적인 사람”이라는 이유다.(443~444쪽)

저자는 드니 디드로 대학 언론학 교수이면서 프랑스 지성을 상징하는 월간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인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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