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해 온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17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삼성 전ㆍ현직 고위 경영진 10명을 경영권 불법승계와 관련한 배임, 차명재산 운용 과정의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99일간의 수사를 마쳤다.
특검팀에 따르면 이 회장은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적정 가격(8만5,000원)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7,700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등 자녀들에게 발행함으로써 회사에 969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다. 특검팀은 당시 그룹 비서실(현 전략기획실) 소속으로 이 같은 불법 경영권 승계 계획을 주도한 전략기획실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등도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특검팀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도 이 회장을 비롯한 핵심 경영진이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추진했다고 결론짓고, 이 회장과 김홍기 전 삼성SDS 사장 등 관련자들을 회사에 1,540억여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배임)로 기소했다.
특검팀은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서는 그룹 전략기획실이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삼성 전ㆍ현직 임원 명의의 1,199개 차명계좌를 통해 운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과 이 부회장, 김 사장 등 전략기획실 핵심 관계자들은 차명계좌를 통해 삼성 계열사 주식을 매매하면서 얻은 차익 5,634억원에 대한 양도소득세 1,128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고객에게 돌아갈 보험금을 빼돌려 약 1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삼성화재에 대해서는 황태선 사장을 횡령 혐의로, 김승언 전무를 증거인멸 혐의로 각각 기소했다.
조 특검은 “(피의자들의) 배임 이득액이나 포탈액이 천문학적이어서 법정형이 무거운 중죄에 해당한다”면서도 “기업경영 및 지배구조를 유지ㆍ관리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내재돼 있던 위법 내지 불법 행위로,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범죄와는 다르다”며 불구속 처리 이유를 밝혔다. 그는 “특히 대기업을 경영하는 중추 핵심 임원을 구속하면 기업경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검팀은 그러나 삼성이 검찰 고위 관계자 등 정ㆍ관계 인사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로비의 흔적과 증거가 없다며 모두 내사종결 처리했다. 조 특검은 “(의혹을 제기한) 김 변호사가 삼성의 관리대상을 수십명에서 40, 50명으로 달리 진술하고 로비금액도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바꿨다”며 “갑자기 구속수사를 요구하다 검찰 조사에서는 특검을 요구하고, 다시 특검에서는 검찰 조사를 요구하는 등 태도도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측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사결과”라고 반발하며 18일 공식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특검이 기소한 사건을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에 배당, 3개월 내에 1심 선고를 내릴 계획이다.
고주희 기자 박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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