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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계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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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계보 정치

입력
2008.04.2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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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호소카와(細川) 혁명’으로 정권을 잃은 일본 자민당이 이듬해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총재를 맞아 파벌 해체에 나섰다. 앞서 77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 내각에서 시도됐다가 물거품으로 끝난 적이 있지만 야당으로 전락한 충격이 워낙 컸던 이때만큼은 성공하는 듯했다. 주요 파벌이 일제히 간판을 내렸고, 언론도 자민당의 변화 노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굳이 분류할 필요가 있을 때만 ‘구 ○○파’라고 불렀다. 그것도 잠시, 98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취임과 동시에 파벌은 부활했다.

■ 파벌정치의 폐해가 모두 씻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국민의 지지가 어느 정도 되돌아와 비난을 견딜 만하게 된 반면 파벌정치를 필요로 하는 정치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1년 일반당원을 움직여 파벌 세력분포의 구조 자체를 무너뜨리며 등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시절에도 파벌해체 구호는 수시로 등장했으나 결과적으로 하시모토(橋本)파=현 쓰시마(津島)파를 최대 파벌 자리에서 밀어내고 자신이 속한 모리(森)파=현 마치무라(町村)파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을 뿐이다.

■ 자민당 의원이 누리는 모든 ‘떡’은 파벌을 통해 분배된다. 당직과 국회직, 각료나 정무차관 등의 자리, 정치자금,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공천 등을 파벌이 챙겨준다.

그 ‘떡’의 뒷면이 바로 유착과 안배라는 폐해다. 한편으로 자민당 스스로는 ‘정책집단’이라 부르기도 하고, 정치학자들도 자민당을 정당이 아닌, ‘파벌이라고 불리는 복수 정당의 장기 정권연합’이라고 보듯, 순기능도 있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일당 지배’에 가깝지만 파벌이 내부 견제와 균형, ‘집권파벌’ 교체를 통해 국민의 민주주의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

■ 다양한 변용을 거치면서도 맥을 이어온 한국 계보정치의 작동원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계보정치는 대통령의 강력한 구심력이 작용한 권위주의 시절의 여당 말고는 예외를 찾기 어렵다. 정당 규모가 커지면 분파는 생겨나게 마련이다. 또 정치적 의사결집이라는 정당의 기본역할을 생각하면 다양한 노선과 정책의 수렴ㆍ통합의 통로인 계보의 존재의미도 떠올릴 수 있다.

더욱이 지난해 대선과 4ㆍ9총선에서 잇따라 확인된 총체적 보수화 경향은 거대여당과 그 내부의 계보정치의 본격화를 예고한다. 문제는 얼마나 그 순기능을 살리고, 폐해를 줄이느냐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금 그 시험대에 서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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