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이제 시ㆍ도교육청으로 넘어갔다. 15일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 자율화 계획’ 발표 이후 시ㆍ도 교육청들은 ‘교육 자치 구현’이라는 큰 틀에는 환영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우열반 편성, O교시 수업 등 논란이 되고 있는 몇몇 쟁점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
논의의 핵심은 단위 학교에 운영의 자율권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느냐는 것이다. 지역별 교육 여건과 개별 학교의 특성이 천차만별인 점을 감안하면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신강수 충북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은 “교육감과 단위 학교장의 권한 강화라는 총론에는 동의 하지만 교과부의 관련 지침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시행 방법을 시도교육청 자율로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ㆍ도교육청들이 관련 태스크포스(TF)의 검토를 거친 후 세부 과제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 우열반 편성
‘수준별 수업’에 대한 규제 철폐로 성적에 따른 우열반 편성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대부분 교육청들은 “교육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여론의 반발을 의식한 듯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필요성 여부를 검토 한 후 단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조건부 찬성’의 의견이 가장 많았다.
변창률 대구시부교육감은 “수준별 이동수업 보다 높은 단계인 우열반을 실시하려면 먼저 개별 학교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주와 전북처럼 ‘위화감 조성’, ‘사교육 과열 우려’ 등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인 곳도 눈에 띄었다.
0■ 교시 수업, 심야 보충수업 허용
‘학생 건강이 크게 침해될 수 있다’며 일부 교원ㆍ학부모단체에서 극렬 반대하고 있는 0교시 수업과 심야 보충학습 허용 문제는 탄력적 운영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학교장 재량에 따라 ‘방송청취’나 ‘독서지도’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0교시 편법 수업이 묵인되고 상황에서 일률적인 지침 하달은 현실을 외면한 조치라는 것이다.
임승빈 경북도부교육감은 “0교시 수업은 기상시간과 아침식사 등 학생들의 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교과부의 지침을 고려해 일정 부분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후 7시 이후의 보충학습을 금지한다’는 지침 폐지도 심야 시간대 사교육 의존도를 감안하면 일정 부분 필요악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교육청도 있다. 서정모 전북도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은 “공교육 내실화라는 측면에서 학교 운영위원회의 동의가 있다면 학교별로 자율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방과 후 학교 영리업체 운영
학원이나 영리기관의 공교육 진입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저렴하고 품질 높은 강의’에 대한 기대보다 ‘학교 학원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공교육의 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적정한 비용이 수반돼야 하는 사안이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내세우는 지역도 있었다.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는 “농촌이 많은 지역 여건 상 양질의 강사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 사설 모의고사 실시
2001년 금지 이후 7년 만에 부활하게 된 사설 모의고사 허용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렸다. 대구처럼 “사설 모의고사를 실시하는 것은 공교육의 기본 취지를 거스르는 일”이라며 불가 입장을 나타낸 곳이 있는 반면, 전북처럼 “학생은 전국 단위의 순위 분석이 가능하고, 교사에게는 진학지도의 길잡이 될 수 있다”는 찬성론도 적지 않았다. 결국 사설 모의고사 실시 여부는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 수용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다.
■ 교원 인사권 이양
유일하게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형식적이나마 분산돼 있던 각종 인사권을 교육감에게 귀속시킨 조치에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최병량 광주시교육청 교육국장은 “인사권 이양은 불필요한 절차만 생략하는 것”이라며 “수요에 따라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용 할 수 있게돼 업무 효율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관망 속 후속 조치 고민
각 시ㆍ도 교육청은 17일 열리는 전국 시도교육청 부교육감 회의를 주목하고 있다.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다른 지역의 사정부터 들어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교과부의 자율화 계획에 대해 속내를 교환한 뒤 세부 조율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교육청이 전국교직원노조 등 교육단체와 체결한 단체 협약도 변수다. 교육청이 정한 지침별 수용여부나 가이드 라인이 법적 효력을 갖는 단셀痼?협약과 상충할 경우 적절한 타협안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가령 0교시 수업이 교원들의 수업시수 등 근무여건을 저해할 요소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교육청 중 처음으로 18일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예정인 서울시교육청의 발표도 관건이다. 파장만 따지면 서울시교육청의 세부 계획은 다른 지역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교육계에서는 그 동안 ‘수월성 교육’의 전도사를 자처해온 공정택 교육감의 성향을 감안 할 때 규제는 최소화하고 단위학교에 재량권을 대폭 부여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7월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공교육감이 우열반 편성 전면 허용 등의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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