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60대 두 남자가 한 병실에 입원한다. 안하무인에 괴팍한 백인 갑부 에드워드(잭 니콜슨)와 차분하고 사려 깊은 가난한 흑인 자동차정비공 카터(모건 프리만). 경제력, 성격, 피부색, 가치관이 전혀 다르지만 세월과 죽음 앞에서는 차별이 없다. 암이라는 절망 앞에서 서로 마음을 열기 시작할 즈음, 카터가 종이에 뭔가를 적다 버린다. 그것이 바로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임을 알게 된 에드워드 역시 몇 가지를 추가한다.
▦장엄한 광경 보기, 낯선 사람 도와주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돈 많은 에드워드의 지원으로 가능해진 두어 가지를 빼면 카터의 것은 이처럼 소박하다. 그러나 아름답다. 반면 에드워드의 것은 갑부답게 ‘최고의 미녀와 키스하기, 스카이 다이빙, 오토바이로 만리장성 일주하기’로 요란하다.
그러나 그 끝은 돈의 쾌락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의 감동이다. 버킷 리스트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그 열린 문으로 잃어버린 순수, 우정, 타인에 대한 사랑, 용서, 이해를 만나게 해준다. 롭 라이너 감독의 영화 <버킷 리스트> 가 말하는 버킷 리스트의 존재 이유이다. 버킷>
▦한때 연령대별로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시리즈가 유행했다. 일본 작가 나카타니 아키히로가 쓴 일종의 ‘성공인생’ 지침서로 10대는 ‘미래가 없는 일을 하지 마라’ ‘부모 품에서 벗어나라’ ‘토론과 연설을 즐겨라’ ‘평생 잊지 못할 자랑거리를 만들어라’ , 20대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한 가지 일을 찾아라’ ‘현장에서 실패하는 경험을 맛보라’고 충고한다. 하지>
반면 40, 50대에게는 ‘과감히 버려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라’ ‘느리게 살아라”고 권한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할 일이 소박하고 겸손해진다는 점이다.
▦ 굳이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도 사람은 누구나 늘 어느 자리에서건 ‘꼭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며 산다. 삶의 목표이자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은 괴롭고 힘들며, ‘하고 싶은 일’은 즐겁고 쉬운 것도 아니다. 삶의 가치와 태도에 따라 둘은 하나가 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대통령도, 총선에서 새로 뽑힌 국회의원들도 국민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들에게 죽음 앞에 선 인간처럼 대통령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추상적 구호가 아닌 정말 작고도 구체적인 버킷 리스트를 써서 보여 달라고 하고 싶다. 10개가 안되면 3개만이라도.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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