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와 카나리 워프로 대변되는 세계 1위의 금융중심지 런던을 탄생시킨 ‘빅뱅’은 1986년 거래수수료 자율화에서 시작했다. 수수료 자율화가 초래한 무한경쟁으로 인해 군소 금융사들은 대거 도산했지만, M&A를 통해 생겨난 대형 금융회사들은 영국을 제2의 황금기로 이끌었던 것. 이 같은 전례로 미루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증권업계의 구도재편을 가져올 ‘빅뱅’가능성이 마침내 가시화되고 있다.
하나대투증권은 17일부터 온라인 수수료율을 현 최저치인 0.024%의 약 60% 수준인 0.015%로 낮춘다고 15일 밝혔다. 하나대투증권이 첫 포문을 연 온라인거래 수수료 인하경쟁은 파격적이고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하나대투는 당초 21일부터 0.019%로 수수료율을 인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인하 폭을 키우고 시기도 앞당겼다. 비슷한 시기에 수수료 인하를 고려하던 경쟁사들을 따돌리고 고객들에게 ‘국내 최저 수수료 증권사’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기 위해 이 같은 ‘깜짝 발표’를 감행한 것이다.
하나대투증권은 현재 1%에 불과한 위탁점유율을 이번 수수료율 인하를 통해 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0.019%선에서 수수료 인하를 고려해왔던 경쟁사들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신영증권이나 굿모닝신한증권 등 온라인 주식거래 비중이 높지 않은 경우에는 “굳이 지금 따라갈 이유가 없다”며 다소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온라인 주식거래 비율이 높은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싸도 너무 싸다”며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온라인 수수료 비율의 손익이 갈리는 기준이 0.02%선이라는 통상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대투증권의 이번 인하는 손해를 그대로 떠안겠다는 얘기”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하나대투 측은 위탁점유율이 아직 낮아서 손해를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겠지만, 위탁점유율이 높은 회사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수수료율”이라며 “이를 따라가야 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긴급회의까지 열었다”고 말했다.
당초 0.017% 정도로 인하할 계획이었던 동양종금증권 관계자는 “추가인하를 고려중이지만, 자칫 수익성이 악화될 소지가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업계 최저 수수료율’을 선포하며 0.019%로 인하할 예정이었던 한국투자증권은 “하나대투에 상응하는 추가 인하를 단행할 것이며 인하 수준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수수료 ‘0’을 향한 무한경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대체적인 업계의 시각이다. 동양종금증권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온라인거래 수수료 인하가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되는 게 보통인데, 한국의 경우 지난해말 한국투자증권의 수수료 인하가 1단계, 지금 하나대투증권이 2단계라고 본다면 3단계는 은행의 증권업 진출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지선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향후 점유율이 높은 키움증권(10%)이나 대우증권(6%)이 수수료 인하경쟁에 가세할 경우 그 여파는 장기적으로 업계 구조재편까지 초래할 정도로 커질 것”이라며 “증권업 설립 문턱이 낮아진 것과 더불어 증권업계에도 통합과 퇴출이라는 시장 시스템이 본격 움직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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