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 / 이학사
1980년 4월 15일 사르트르가 75세로 사망했다. 문학비평가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가 곧잘 인용하는 사르트르의 비유가 있다. “비평가는 묘지기”라는 것이다. “… 묘지가 평화로운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서재보다 더 기분 좋은 곳은 없다. 서재 속에는 죽은 사람들이 있다. 그 죽은 사람들은 밤낮 쓰기만 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납골당의 항아리 같이 벽을 따라 판자 위에 늘어놓은 조그만 관밖에는 없다.”(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에서). 비평가는 묘지(서재)에서 죽은 사람(저자)들의 관(책)을 더듬으며(독서), 거기에 숨결을 불어넣는(비평) 시체지기에 다름아니라는 비유다. 얼마 전 김 교수를 만났을 때는,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들었다. “‘20세기는 사르트르의 세기’가 아니라, ‘사르트르가 곧 20세기’였다는 거야.” 문학이란>
그 말대로 사르트르는 ‘그 자신 안에 20세기가 다 들어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묘지기이자, 거리에서 앙가주망을 실천한 행동가였으며,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으로 가장 떠들썩한 화제를 만든 지적인 스캔들 메이커였고, 노벨문학상을 부르주아의 상이라며 거절한 악동이기도 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지옥, 그것은 곧 타인”이라는 그의 명제들을 빼고 20세기 후반 인류의 정신사조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1950년대 이후 문학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고,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논증한 그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은 1980년대까지 대학가의 필독서였다. 지식인을>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10월 29일 사르트르가 파리에서 한 강연을 담은 책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강연문이라는 특성상 이 자그마한 책은 그의 여느 글보다 더 명료하게 실존주의를 집약하고 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은 그 어떤 뒷받침도, 그 어떤 도움도 없이 매 순간 인간을 발명하도록 선고받았다고 생각한다…” 사르트르가 폭포수 같이 내뿜는 언어의 성찬이다. 실존주의는>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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