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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련 고서 번역본 '그들이 본 우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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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련 고서 번역본 '그들이 본 우리' 출간

입력
2008.04.1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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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서양인들의 인식은 언제 어떤 식으로 형성돼 왔을까? 한국이 근대국가로 형성되어가던 16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서양에서 출간된 한국관련 도서들이 체계적으로 번역돼 나온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명지대-LG연암문고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그들이 본 우리’ (살림출판사 발행)시리즈다.

1997년부터 수집한 1만 여종의 고서, 문서, 사진 가운데 91종으로 1년에 약 20권씩 2012년까지 완간될 예정이다. 최근 3권의 번역서가 첫 선을 보였는데 16세기 포르투갈 신부, 20세기초 미국인 선교사, 19세기말 영국군 장교 등 다양한 시대, 다양한 이방인들의 시선을 아우르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임진난의 기록> 은 1563년부터 1597년까지 일본에서 활동했던 예수회신부 루이스 프로이스가 남긴 방대한 분량의 <일본사> 중 조선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 번역한 책이다.

그는 조선의 구체적인 위치, 지형, 기후는 물론 주요 생산물과 특산물, 궁술과 해전에 능한 조선인의 특징, 중국과 조선의 사대주의적 조공관계, 강력한 쇄국정책 등을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베일에 싸였던 조선의 존재를 유럽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임진왜란에 관한 기록은 1594년초까지 남아있는데 사료적 가치도 상당하다. 지은이는 전국시대의 정치적 격변기를 몸소 경험했고 도요토미 히데유시가 임진왜란을 계획하고 치르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극소수 외국인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소녀 옥분이> 는 1903년부터 1912년까지 서울, 경기 일원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미국인 감리교 여선교사 미네르바 구타펠이 한 선교잡지에 연재했던 조선 관련 에세이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부잣집에 팔려간 뒤 굶주림과 학대를 받다가 동상 때문에 손과 발이 잘리는 소녀 옥분이, 거리의 부랑소년 유복이 등 이른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관심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까지 다양한 서술방식을 구사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문학적 재능도 엿볼 수 있으나 시혜적 시선, 기독교의 선교 사명감이 짙게 배어있다는 한계도 간과할 수 없다.

영국군 장교였던 알프레드 에드워드 존 캐번디시의 <백두산으로 가는 길> 은 1891년 제물포로 입국한 두 명의 영국군인이 서울, 원산을 거쳐 백두산을 등정하는 여행기다. 호랑이 사냥을 목적으로 온 이들이 남긴 조선의 동식물, 식생 등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당시 정국에 관해서 “임금은 허약한 신체와 정신을 타고 났으며 이 때문에 강한 정신의 소유자인 왕비에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왕비의 친척과 지지자들이 모든 관직을 차지했다”며 민씨 일파의 세도정치에 비판적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서양에서 출간된 한국에 관한 도서시리즈는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가 1975년에서 2000년까지 펴낸 ‘한말 외국인’(집문당 발행ㆍ전 21권)시리즈가 유일하다.

당시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그리피스 <은자의 나라 한국> 중요한 저작들이 대부분 번역됐지만 영ㆍ미인 중심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다른 국가의 외국인들이 남긴 자료가 다수 번역될 예정이어서 우리를 바라본 서구인의 시선을 좀더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 서구인들의 근대 한국觀 분석

조선 사람들을 매우 활기차고 도덕적이라고 평가한 비숍이나 매켄지로부터, 진실성이 결여되고 무기력하다고 악평한 조지 케넌까지 구한말 조선인들을 보는 서양인들의 시선은 다양했다.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는 최근 역사교양잡지 '한국사 시민강좌42' 호에 발표한 '개화기에 서양인은 한국을 어떻게 보았는가'라는 글에서 개항전후부터 을사조약 이전까지 서양인들의 공통적인 한국관을 분석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대체로 조선에 대해 ▲풍부한 자원, 우수한 민족성, 높은 교육열을 가졌으나 ▲관료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무능력으로 그 잠재력이 고갈됐고 ▲자율적 개혁이 불가능해 외부세력의 지도와 조력이 불가피했으며 ▲그에 부응하듯 외부의 지도와 조력에 힘입어 갑오ㆍ광무 연간에 개혁과 발전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당시 서양인들은 조선사회의 내재적 발전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당시 사회가 실제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반면 당시 서양인들의 시선에는 문명 서양 대 야만 한국의 위계구도가 매우 견고했으며, 한국의 문화유산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에도 '찬란한 과거 대 폐허의 현재'식의 시간적 대칭구도를 설정한 점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서양인들의 시선은 역사학계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자주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내재적 발전론과 주체적 발전역량을 부정하는 식민사관, 대한제국의 성과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 식민지 근대화론 중 어느 한가지에 경도된 인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이는 한국 근대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의 고리를 풀어가는 데 시사점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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