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났다. 당선자나 낙선자, 선거관리원 등 모두가 고생했지만, 정작 수고한 것은 국민들이었다. 궂은 날씨에 투표장에 가느라, 일단 투표를 한 뒤 여가를 보내리라 결정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번 총선은 유난히 선거스트레스가 심했다. 결과야 어떻든 많은 사람들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이슈와 쟁점도 없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도 누군가를 뽑아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 누군지도 모르고 행사한 주권
공천심사를 둘러싼 웃지 못할 소동을 벌이고, 탈락자들이 '친박연대' 등 기상천외한 이름을 내걸고 이리저리 공천쇼핑 끝에 출마를 강행하고 당선되고 또 당선되자마자 복당 논란을 일으키는 등 한국정치는 코미디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장 자크 루소는 “영국 인민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큰 착각이고,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와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라고 꼬집었지만, 우리 유권자에게는 선거기간의 자유조차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참여가 신성한 공민의 의무임을 강조하며 투표를 독려했고 문화재청은 고궁등 무료관람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까지 동원했다. 언론은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며 모처럼 공익정신을 발휘했지만 첫 민주주의 선거 후 60주년을 맞은 2008년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란 '기념비적 결과물'을 막지는 못 했다.
유권자가 여당에게 선사한 153석은 힘은 주지만 독선과 오만을 경고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절묘한 숫자였다. 거기에 46%란 역대 최저의 투표율은 민주주의의 기초원리 중 하나인 다수지배의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디스카운트였다. 자연스레 '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단계를 넘어 공고화단계로 접어들었다던 한국에서 사상 최저의 투표율과 그로 인한 대표성 결함으로 대의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는 18대 총선을 정당ㆍ정책ㆍ참여정치가 실종된 ‘민주주의의 위기’였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투표율 저하 자체보다는 그것을 초래한 원인에 있다.
투표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선관위 일각에서 주장하듯 '의무투표제'나 '페널티제' 등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피선거권을 강화해 더 유능한 후보들이 나오도록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론까지 대두하게 만든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해법은 아니다.
핵심은 정치권 전체가 무관심ㆍ외면이라는 형태로 일종의 불신임을 받았다는 사실에 있었다. 구 여권은 거여 독주에 대한 견제 역할조차 맡기기 어렵다는 냉엄한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가장 큰 라이벌이 사실상 파문을 당한 터에 경제 살리기를 내세워 집권한 지 두 달도 안 된 집권세력을 상대로 한 총선이란 이름의 게임은 어수선하고 시끄러웠지만 재미가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주주의의 더 큰 위기가 주권의 휴지기에 온다는 것이다. 루소의 말처럼 유권자는 선거기간에만 자유롭다. 선거가 끝나고 주권이 쉬는 임기 동안, 선출된 대표는 자신을 선출해 준 자의 구속을 벗어나 소신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유위임의 원칙이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더 큰 문제는 선거 후의 통제
그러나 이 원칙은 많은 경우 현실을 반영하지 못 한다. 인류는 여전히 주권자의 의사와 이해관계에 상반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을 가진 대표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단을 찾고 있는 중이다. 국민소환제나 발안제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통제수단을 도입한 나라도 적지 않지만,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있어 제도화가 용이하지만은 않다. 우리의 정치제도가 지속 가능하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특효약 없는 이 고민거리야말로 선거스트레스의 압권이었다.
<문명의 붕괴> 라는 책에서 지리학자 재럿 다이어먼드는 위기를 예견하고 초기에 조치를 취할 용기를 가진, 통찰력있고 강력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가 사회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며 용기있고 행동하는 시민이 사회를 바꾼다고 쓰고 있다. 그래도 그 말에서 위안을 찾아본다. 문명의>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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