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오랜 역사가 없어서, 박물관이란 데를 가보면 별의별 잡동사니에 의미를 부여해 기념을 한다.” 어려서 어른들에게 들은 미국에 대한 편견어린 단평 가운데 하나다. 사실 이 말은 전후 일본의 지식인들이 곧잘 뇌까리던 소리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미국 중산층의 소비문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 왜냐면, 미국인들이 대중문화를 수집하고 기념하는 방식에 공감하려면, 각 요소들의 레퍼런스를, 그것도 연도별로 숙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후 미국의 중산층 신화가 무너지는 오늘, 이제 그 문화도 역사적인 것이 될 위기에 처했다. 따라서 미국 중산층의 문화를 유희하는 것으로 이름난 작가인 리차드 프린스(59)의 존재감이 새삼스럽다.
안타깝게도 대중은 그를 “이유 없이 작품 값이 높은 작가”로 기억하고, “작가가 만들면 쓰레기도 작품?”이라는 편견의 확증으로 종종 그를 언급한다.
프린스의 작품은, 광고 인쇄물이나 남의 사진을 재촬영한 작품임에도 경매에서 초고가에 낙찰돼왔고, 그로 인해 광범위한 오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 작가의 인간형은 대단히 흥미롭다. 처음 작업을 마주하면, 잘 이해도 안가고 매력도 없어서 별로다 싶지만, 사람을 알고 나면, 작업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미국식 편집광이다. 각종 도서의 초판본, 특정 이미지를 담은 광고, 연예인들의 홍보용 사진과 서명, 자신이 마신 1회용 커피 컵, 성적 농담, 만평, 다른 작가의 작품 따위를 꾸준히 수집한다.
요즘의 ‘오타쿠’들과 꽤 비슷해서, 집에 박혀있기를 좋아하고, 수집품의 관리에 철저하며, 이런저런 농담을 즐기지만, 성격은 괴팍하고 폐쇄적이라 알려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카이브를 기초로 회화, 사진, 조각에 이르는 다양한 작업을 만든다.
대표작인 ‘농담 페인팅’ 연작은 그가 각종 신문, 잡지, 서적 등에서 수집한 농담을 회화로 제시하는 작업이다. “농담의 문제는 그 종류가 너무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농담이 좋아요. 보통은 오래된 농담들이 가장 좋죠”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수집한 농담 가운데 특정 패턴의 것들을 모아 한 세트의 연작을 만든다.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으로 커다랗게 확대 프린트된 농담을 처음 마주하면 다소 황당하다. 확대 인쇄된 원본 문구는, 종종 앞뒤 맥락에서 잘려 나온 통에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또 본디 썰렁한 농담인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
하지만, 수집한 농담들이 초지일관 미국 중산층의 기이한 (섹슈얼리티, 죽음, 인종에 관한) 관념을 관통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나면 새로운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그의 보조 작업 공간인 ‘두 번째 집’의 외벽에 걸어놓은 농담 페인팅엔 이렇게 적혀있다: “장례식장에서 뒤집어졌잖아. 목사하고, 랍비하고, 신부하고 고인이 얼마나 평안하게 임종했는지 말하는데, 나도 죽고 싶더라고.”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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