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 영빈관인 도쿄(東京) 시내 이쿠라(飯倉)공관에서 4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 기자들이 상대국 장관에게 번갈아 던진 질문 중에 공통된 것은 북일 문제였다.
“북핵, 납치문제에서 양국의 공조 방안은 무엇인가.” “납치문제가 6자회담 성공에 지장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공동노력하기로 했다.”(유명환 장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려는 미국의 움직임과 관련한 일본의 입장은?” “미국은 테러지원국 삭제에서 일본의 입장을 고려한다고 밝혀왔다. 미국과 긴밀히 연락할 것이다. 납치문제가 6자회담 진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북한이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무라 마사히코 장관)
■ 대북경제제재 오늘 또 연장
두 장관은 똑같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6자회담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표현을 썼지만 뉘앙스는 묘하게 달랐다.
거칠게 말해 납치문제가 해결 안 되면 6자회담 타결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일본쪽의 희망이라면, 한국은 납치문제 때문에 6자회담 성공이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는 데 더 무게를 두는 쪽이라고 할까. 유 장관은 회담에 앞서 주일 한국특파원 간담회에서 6자회담 진전에 따른 대북 에너지 지원과 관련해 “이 프로세스에 일본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동참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2006년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발동한 독자적인 대북경제제재를 14일부터 또 6개월 연장했다. 만경봉호를 비롯한 북한 국적 선박의 입항 금지, 북한 물품 수입 금지, 24개 사치품 북한 수출 금지, 북한 국적자 일본 입국 금지 및 조총련 관계자 북한 방문 후 재입국 금지가 주요 내용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일본은 수위를 높여 이번까지 세 번이나 제재를 연장했지만 점점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초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 발동한 조치가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압박용으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 길이 멀긴 해도 북핵문제가 북미협상 진전과 함께 청신호를 내고 있지만 일본은 최악의 상황에서 발동한 대북제재 내용을 개선할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북핵에 끼워 넣어 납치문제를 강조하는 빈도도 점점 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이 대북 지원을 중단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제재는 효과가 없고 따라서 북한이 제재 때문에 일본의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만경봉호 입항 금지로 북한과 일본을 오가는 재일동포들만 힘들게 할 뿐이다.
■ 정부 내서도 비판여론 대두
이번 연장을 앞두고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10일 열린 자민당 외교관계 합동회의에서는 “일본의 제재는 압력이 되지 않는다. 효과가 없다면 대화를 해야 마땅하다”는 ‘대화 노선’이 등장했다. 정부에서도 “핵을 완전히 폐기하면 납치문제에 진전이 없어도 제재를 조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 북일 관계 개선을 강조했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조총련의 대북제재 해제 요청서를 받아 보고 한 말은 이렇다. “북한 사람들은 역시 해제를 원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경제제재가) 효과가 있는 것이지 않은가.”
납치문제가 6자회담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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